유일무이한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가씨>의 일본 프로덕션은 어찌 되었을까. ‘일본통’ 김종대 프로듀서는 <아가씨>에서 일본 프로덕션과 헌팅, 현지인 섭외 등 일본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용필름 임승용 대표와는 시오필름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김 프로듀서의 합류는 정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가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1910년대 고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1910년대의 고베는 온갖 서양 문물이 오가던 곳이다. 주요 캐스팅을 일본인 배우로 할 예정이었고 프로덕션도 일본영화와 비슷했다. 규모가 큰 글로벌 프로젝트처럼 돼가고 있었다. 스탭 중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부담이 컸는데 이야기가 지금처럼 방향을 틀면서 많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책임은 막중했다. 매번 일본으로 헌팅을 가긴 어려웠기에 김 프로듀서는 현지에 임시 제작지원팀을 꾸려 방대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일본엔 돈 많은 사람들이 양식과 일식을 섞어 지어놓은 이상한 집이 많았다. 도쿄대에 그런 건물만 연구하는 연구소도 따로 있는데 그곳에 자문을 구해 일본에 있는 집이란 집은 모조리 살폈다. 마음에 드는 장소는 현지 지원팀에 동영상을 찍어다 달라고 해서 확인해본 뒤 헌팅을 다녔는데 나고야 인근에 있는 육화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정원의 규모나 장비가 들어올 여건, 주차장 등 모든 게 적합했기 때문이다.”

가장 신경썼던 것은 일본인 관계자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어선 안 됐다. 일본인들과 신뢰를 쌓으려면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나리오를 전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선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들이 부풀려 받아들이지 않게끔 정보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인들은 어렵고 까다롭지만 원칙을 지켜 대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두고 미리 정보를 줘 안심시킨 후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걸 들이밀 수 있게 되거든. (웃음)” 김 프로듀서는 주민 협조를 얻어 새벽 촬영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박찬욱 감독의 전작 DVD들을 들고 동네 반상회장을 찾아 <아가씨>에 대해 설명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수고까지도 마다지 않았다. 일본인 보조출연자 섭외는 ‘연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엔 영화 티셔츠나 DVD 등을 주면 단역을 맡아주는 자원봉사 시스템이 있다. 시대배경 때문에 검은 머리의 단역이 많이 필요했는데 일본인들이 대부분 염색머리여서 염색 비용은 우리가 내고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섭외했다.”

최근 그는 우치다 겐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2012)을 리메이크한 <럭키>(제작 용필름, 감독 이계벽)의 9월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소원>(2013)의 김지혜 작가와 일본 소설 <사망추정시각>의 각색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 프로덕션과 긴밀히 교류하려면 “중간 역할을 잘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일본 영화인들은 ‘시동’이 걸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불안요소를 캐치하고 그걸 해소하는 데에 공을 들여야 한다. 지금도 일본인 감독님과 한국에서 일해보잔 얘길 하고 있는데 자기가 몇달 동안 타국에 와 작업하는 게 가능할까 불안해하고 있더라. 그 불안만 없애주면 그다음은 뭘 해도 될 거다. 물론 속이 썩어나는 일이긴 하지. (웃음)”

정원조가 꼽는 김종대의 인상적인 순간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김 프로듀서는 “윤활유 같은 사람”이란 평가를 듣고 있었다. 정원조 프로듀서는 “사람들 사이를 조율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어 과하지 않은 행동으로 항상 주변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김 프로듀서를 칭하며 그가 일적인 면에서도 굉장한 프로페셔널임을 강조했다.

“<아가씨>의 일본 촬영이 결정되자 김 PD가 시대상에 관한 자료와 로케이션 정보를 싹 주더라. 감독님이 사전답사를 가시기 좋게끔 장소와 업체까지 빠르게 정리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프로덕션에 필요한 창조적 영감까지 주는 뛰어난 프로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