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성격과 취향을 가진 디(스펜서 그래머)와 제니(알렉사 베가)는 룸메이트다. 화려한 외모의 디는 유흥을 즐기며 자유롭게 지내고, 진지한 성격의 제니는 내적 평온을 추구하며 철학과 여행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둘은 서로의 기분을 과히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나름 잘 지내보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대학원 진학을 위해 큰돈이 필요해진 제니는 난자 기증으로 학비를 마련해보려 하는데 디가 자신을 따라 난자 기증 인터뷰를 신청했음을 알게 된다. 디가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한 제니는 폭발하고 둘의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번진다.
<룸메이트>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로 꽤 흥미롭다. 진로, 생활, 외모, 취미, 스트레스, 성적 욕구 등 20대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고민할 법한 이슈들까지 적절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간결한 프로덕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대사와 소품에서 20대 여성의 심리와 현재를 세심하게 관찰한 점도 눈에 띈다. 캐릭터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자세하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디의 대사엔 “건성 피부”라거나 “생선 기름 알레르기가 있다”, “바나나복숭아스무디를 즐긴다”는 등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내용이 많다. 여행을 갈 때마다 예쁜 접시를 사와서 모아두거나 디와 자기의 물건에 구분을 위한 별표 스티커를 붙여두는 등 제니의 캐릭터는 잡다한 소품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는 성격이 다른 두 여자가 룸메이트로서 생활을 공유할 때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을 무척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특히 자신의 불쾌함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서로에게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 애쓰는 모양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별것 아닌 일로 기분이 상해 괜한 심술을 부리는 꼴도 그럴듯하다. 과격한 육탄전으로까지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액션영화 못지않게 배우들의 스턴트가 뛰어나며 집 안 곳곳의 기물들을 이용한 액션 연출도 재치 있다. 지나치게 광적인 싸움이 된 게 아닌가도 싶지만 룸메이트와 살아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 ‘광기’마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현실반영적 호러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