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전작 <블러드 온 스노우>의 결말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슬로 마약 시장의 한축을 담당하던 ‘뱃사람’은 세력다툼에 승리해 1인자로 거듭난다. 마약 판매상 욘은 뱃사람의 실력 있는 부하를 제거했다는 이유로 직접 뱃사람의 해결사가 되어달란 제안을 받는다. 딸아이의 병원비가 필요했던 욘은 여지없이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는 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타인에게 총을 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과거 부하의 죽음은 욘과 무관하며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을 뿐. 주로 잡무를 맡던 욘은 첫 살인 명령을 받아든다. 하지만 욘은 현장에서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인적이 드문 백야의 땅에 잠시 숨어 지내기로 한다.
<블러드 온 스노우>가 킬러 일을 천직으로 삼은 남자를 내세웠다면 <미드나잇 선>은 살인은커녕 싸움 하나 제대로 못하는 ‘말만’ 킬러가 주인공이다. 기초적인 설정을 제하고는 배신, 사랑, 반전이 알차게 들어선 두 범죄자의 도주기는 똑 닮았다.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문투는 물론 흰 설원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서스펜스를 켜켜이 쌓아가는 전개 방식도 유사하다. ‘오슬로 1970 시리즈’의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답게 <미드나잇 선>에는 1970년대 오슬로의 풍경이 한층 더 음울하고 어두운 톤으로 묘사된다. 오슬로가 플래시백에 주로 쓰인다면 생생한 현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노르웨이 최북단의 핀마르크 지역. 요 네스뵈는 지역이 지니는 ‘백야’와 ‘버려진 땅’의 이미지를 통해 북유럽 스릴러 고유의 무드를 강조한다. 또한 지역 종교와 소수민족을 모티브로 활용하며 이야기에 활기를 더한다. ‘미드나잇 선’은 원래 요 네스뵈가 쓰던 <납치>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책 이름으로, 주인공인 작가 톰 요한센이 ‘블러드 온 스노우’와 함께 1970년대에 발표한 소설이라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한 두 ‘소설 속 소설’이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백야의 서스펜스
핑켈슈타인이라고 하는 남자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면 무엇이든, 심지어 빛까지도 빨아들이는 우주의 구멍을 발견했다고 한다. 구멍은 너무 검어서 육안으로는 절대 볼 수 없었는데 우리 상태가 딱 그랬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어느 날 중력장에 갇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절망과 끝없는 자포자기의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간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바깥세상의 거울상(像)이고,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는지, 절망하지 말아야 할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지 계속 자문한다.(119쪽)
“지면 더 나아져요, 울프 아저씨?”
… “더 잘 질 수 있지. 우린 살면서 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아. 심지어 후타바야마도 연승 행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졌지.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자주 하게 될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니?”(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