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를 벗어나려는 기운으로 가득한 책 두권과 경계(警戒)를 붙들려는 힘으로 충만한 책 두권이 <씨네21> 북엔즈에 함께 꽂혔다. <군함도>는 하시마섬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과정을 담는다. <표현의 기술>은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해 늘 자기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오랜 세월 다져온 표현의 기술을 연장처럼 건넨다. 한편 <미드나잇 선>은 보스의 명령을 어긴 후 노르웨이 최북단 지역에서 숨어 지내는 해결사가 경계를 늦추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장을 따라붙는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일상의 풍경 밖으로 조금씩 밀려난 이들에게 가해지는 개인의 꾸준하고도 은근한 경계의 시선을 그린다. 독자와 책 사이의 경계(境界)를 허물고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경계(警戒)의 시선을 두드리는 네편의 책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한수산 작가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오카마사하루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을 읽고 강제징용과 피폭 문제에 대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는 징용 피해자들과 “강제 노역에 처해졌던 해저탄광 현장을 함께 걸으며, ‘여기서 살았다’, ‘저기서 울었다’, ‘이 해안 절벽에서 자살을 결심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27년을 보내고” 소설 <군함도>를 완성한다. 일제에 의해 잔혹 노동에 내던져진 조선인 징용공들이 물리적 위험과 고통에 맞서 하시마의 해안선을 넘고 일본의 국경마저 넘으려는 처절한 과정을 두권에 나눠 담는다.
글쓰기 훈련법 강의를 마친 유시민 작가에게 한 디자인 업계 종사자가 다가와 말한다. 본인이 디자인을 하며 겪었던 문제들과 글쓰기하며 부딪히는 문제들이 같다고. “글쓰기는 결국 내면을 표현하는 일”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마땅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유시민 작가는 <표현의 기술>을 써낸다. 책 초반에는 글쓰는 이유, 태도와 목적 등을 다지다가 후반에 이르면 글 종류에 따른 구체적인 쓰기 방법들이 소개된다. 표현에 앞서 늘 갑갑함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하다.
유명 작가이자 뮤지션, 경제학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재주꾼 요 네스뵈는 전작 <블러드 온 스노우>에 이어 신작 <미드나잇 선>에서 또 한번 도망자 신세의 킬러를 극의 중심에 세운다. 인적 드문 노르웨이 최북단 지역에서 얼마간 은신하기로 한 주인공이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가운데 동네 사람들과 서서히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과, 그를 찾아 북쪽으로 진격해오는 암살자간의 대결이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주인공이 여타 작품들처럼 큰 능력자가 아니라는 점이 도주극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조중균의 세계>와 <너무 한낮의 연애>로 6회와 7회 젊은작가상을 연달아 수상한 김금희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아홉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특정 캐릭터의 내면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세실리아>, <조중균의 세계>, 스릴러 색채가 강한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등이 수록됐다. 해고 위기의 노동자 혹은 해고자들,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채무자 가족,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다온 저소득층 노인 등 사회의 변두리를 향하는 사람들을 향해 개인 혹은 사회가 지닌 경계의 시선들을 들추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