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기절제 또는 여성할례라 불리는 행위가 중동, 아프리카 등 전세계 30여개국에서 행해진다. 세계보건기구의 자료로 보면 이집트, 수단, 소말리아 등에서는 전체 여성의 80% 이상이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 그들의 전통이라며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소녀와 여성들의 고통을 들여다봐야 했던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2015)의 김효정 감독이다. 17년간 상업영화 현장에서 제작팀원으로, 프로듀서로 일해왔던 그녀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여성성기절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다.
-어떻게 여성할례, 여성성기절제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우노필름에 들어갔다. <행복한 장의사>(1999), <킬리만자로>(2000)에 이어 <무사>(2001)의 제작부로 일할 때였다. 동경해온 <동사서독>(1994)이 촬영된 중국 중웨이에서 <무사>를 찍으며 사막에 매료됐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뒤로 모로코, 중국, 칠레 등지에서 사막 마라톤을 이어갔다. 그러다 할례를 피해 도망친 소말리아 출신의 모델 이야기인 <데저트 플라워>(2009)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달린 사막 이면에 여성성기절제로 힘들어 하는 여성들이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결국 영화가 됐다.
-처음에는 직접 연출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방대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인터뷰할 사람들을 섭외했다. 잘 알던 감독님께 연출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감독님께서 ‘이 작품은 김효정 프로듀서의 작품 같다. 직접 연출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면 찍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성성기절제가 아프리카의 우기인 12월과 1월 사이에 진행되다 보니 때를 놓치면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웃음)
-영화에서 할례(circumcision)와 여성성기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 FGM)를 구분한다. 어떤 용어를 쓰냐에 따라 입장의 차이가 있다.
=종교적, 전통적 이유로 이 행위를 옹호하는 쪽이 할례라 말한다. 전통, 종교적 입장까지 반대하지는 않으나 여성의 육체적 성기절제에 반대하는 쪽이 여성성기절제라 하고. 양쪽 입장을 다 듣고 싶었는데 막상 인터뷰를 해보면 할례 찬성의 이유는 ‘전통이다’라는 게 유일했다. 자연스레 할례 반대의 이야기가 좀더 들어가게 되더라.
-촬영의 원칙이 있었나.
=여성성기절제 장면은 절대 찍지 않았다. 같은 주제의 해외 다큐멘터리들은 여성성기절제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장면 없이도 여성들의 고통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현실을 변화시켜갈 여지를 살펴보는 게 <소녀와 여자>의 초점이기도 했다.
-여성혐오를 민감하게 살펴야 할 때다보니 <소녀와 여자>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 같다.
=촬영을 시작한 2010년만 해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대기업 사회공헌팀에 계획서를 내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이슈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몇년 사이에 인식이 바뀌었다는 걸 체감한다. 지인들과 “당장 한국 사회와 관련이 없지만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끊임없는 차별이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성기절제로, 서울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소녀와 여자>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