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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정글북>을 만나는 여섯 가지 키워드
안현진(LA 통신원) 2016-06-08

늑대 무리에 의해 키워져 자신이 늑대인 줄 알고 자란 인간 소년, 모글리의 이야기 <정글북>이 실사영화로 만들어졌다. 자사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아카이브를 실사영화로 제작해 새로운 세대와 오래된 팬을 사로잡으려는 디즈니의 행보에 더해진 신작이다. <아이언맨> 시리즈와 <아메리칸 셰프>의 존 파브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정글북>은, 1967년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글북>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한 시각적인 성취를 보여준다. 정글에 한발도 들여놓지 않고, 그리고 동물 배우는 한 마리도 캐스팅하지 않고 동물의 왕국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점이 특히 놀랍다. 또한 이러한 시각적 완성도에 뒤지지 않는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갖춰 미국에서는 개봉한 지 한달 반 만에 3억4천만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정글북>의 북미 개봉을 2주 앞둔 지난 4월1일, 할리우드의 유서 깊은 엘 캐피탄 극장에서 <정글북>을 미리 봤다. 다음날 존 파브로 감독과 영화 속 유일한 인간 캐릭터인 모글리를 연기한 배우 닐 세티를 만났다. 이날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영화 <정글북>을 여섯개의 키워드로 살펴본다.

키워드1. 메이드 인 로스앤젤레스

<정글북>은 로스앤젤레스에 마련된 세트에서 100% 촬영됐다.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할 즈음 <인사이더>는 <정글북>의 촬영장을 짧은 동영상으로 공개했는데, 진흙이나 모래 같은 최소의 소품만으로 꾸민 블루스크린 세트가 있었고, 블루스크린 앞의 배우는 모글리를 연기한 닐 세티가 유일했다. 수풀이 우거진 밀림과 계곡의 물, 정글의 동물들이 모두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관객에게 더 놀랍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많은 부분을 후반작업 과정의 컴퓨터그래픽과 시각효과를 더해 완성했다. <아바타>(2009)와 <그래비티>(2013)에서 활용된 각기 다른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동시에 쓰였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처럼 스토리보드, 아트보드를 그리고 세트를 짓는 등 철저한 사전과정이 선행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작됨으로써 <정글북>은 버뱅크에 본사를 둔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로부터 상시적인 피드백을 받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존 래시터와 존 파브로와의 친분으로 픽사의 브레인 트러스트로부터 제작 중 의견을 듣기도 했다(픽사의 브레인 트러스트는 크리에이티브 리더들로 구성된 소규모 오피니언 그룹으로 픽사에서 제작하는 모든 영화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현재 멤버는 리 언크리치, 브래드 버드 등이 있다.-편집자).

키워드2. 1894 vs 1967 vs 2016

늑대 아이는 원저자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설화였다. 1894년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정글북>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야기를 소개했고, 1967년 디즈니는 유머와 친근함을 더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2016년 공개되는 존 파브로의 <정글북>은 21세기의 영화 기술을 도구로 삼아, 오래된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할리우드의 전통을 따른다. 감독 스스로가 친숙하게 느낀 쪽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영화를 만들며 참고한 건 키플링의 책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참고하는 건 실사영화로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코끼리가 묘사된 방식이 그렇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코끼리는 귀엽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여 웃음을 주지만, 책에서는 자연을 움직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됐다.”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아서 일일이 비교하는 것이 어렵지만, 존 파브로의 <정글북>이 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은 결말이다. 존 파브로는 새로운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며 넌지시 속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영화 개봉 뒤 2주 만에 디즈니는 <정글북> 속편의 제작을 결정했다. 존 파브로와 닐 세티 모두 참여한다.

키워드3.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정글북>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에두름 없이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망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존 파브로는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보며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묘사되는 방식이 시간에 따라 변화해온 것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글북>에 반영했다.

“우리 세대가 아니라면 그다음 세대라도 이 영화를 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키플링 시대에 자연은 두렵고 거대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이 사라져가고 있고 우리는 그저 걱정만 하고 있다. 이것이 계속된다면 자연은 영화에서처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모글리는 자연 안에서 조화롭게 섞이려고 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자연을 도울 수 있으면 돕는다.” 파브로는 또한 키플링 소설 속에 묘사된 자연의 질서도 영화에 반영하려고 애썼다. “정글의 법칙”, “가뭄 휴전 협정”, “평화의 바위” 등과 같은 요소들은 모두 키플링의 책에서 나온 것이다.

키워드4. 그래도 디즈니

존 파브로가 <정글북>을 만들면서 애니메이션보다 키플링의 책을 더 참고했다고 한들 디즈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다시 말하면 관객은 해피엔딩이 보장된 평균 이상의 웰메이드영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거다. 존 파브로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두 원작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의 비현실성을 피하려 키플링의 책을 참고했지만, 그로써 잃을 수 있는 디즈니만의 행복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라이온 킹> <타잔> <피노키오> <밤비> <백설공주> 등을 반복해서 보았고 뮤지컬 장면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타이밍을 연구했다. 또한 애니메이션에만 존재하는 캐릭터인 킹 루이(크리스토퍼 워컨)가 등장하는 장면을 이번 영화에서도 살렸는데, 킹 루이의 장면은 <정글북>에서 가장 긴장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완성됐다.

결국 관객으로부터 사랑받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정글북>이 디즈니스러워지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파브로는 <정글북>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가 되길 바란다며,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중간중간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뻔한 어린이영화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키워드5. 모글리를 찾아서

<정글북>의 주인공인 모글리를 캐스팅하기 위한 오디션은 치열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인간이라고는 딱 한명 나오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역배우를 찾아 인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물색에 나섰고, 미국 안에서도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2천명이 넘는 지원자가 오디션에 지원했고, 인도계 미국 가정에서 태어난 닐 세티가 낙점됐다. “닐은 누구라도 웃게 만드는 아이다. 촬영감독이 좀처럼 웃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그도 닐과 있을 때는 늘 웃고 있었다. 그런 건 타고나는 거다.”(존 파브로) 실제로 만난 닐 세티는 사랑스럽고 영리한 아이였다. 자라서 배우도 되고 싶지만 부모님처럼 치과의사도 되고 싶다는 꿈 많은 소년이었다.

키워드6. 3D여야 하는 이유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정글북>처럼 유명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영화로 만든 감독의 마음이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 거대한 스크린으로 봐야만 하는 영화가 있다. 나 역시 집에 가면 아름답고 커다란 TV 스크린이 있다. DVD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보면 편하다. 하지만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가 개봉했을 때 나는 즉시 극장으로 갔다. 이 영화만큼은 극장에서의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바타>를 보았을 때 3D영화가 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 특별한 몇몇 순간을 위한 3D가 아니라 영화적 경험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3D를 선택하고 계획했다는 존 파브로는 <정글북>을 3D로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 감독이 의도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가장 잘 전달될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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