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people] “천성적인 선함이 있는 것 같다” - <달에 부는 바람> 이승준 감독과 주인공 예지의 어머니 김미영씨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6-06-02

이승준 감독과 김미영씨(왼쪽부터).

“그럼 예지는 감독님의 존재를 아나요? 자신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요?” 혹시나 하는 물음이었다. 예지에게 이승준 감독은 아무도 아닌 존재 “노바디”였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라는 게 무엇인지, 예지가 그 개념을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달에 부는 바람>은 시청각중복장애를 안고 태어난 예지와, 예지와 소통하길 갈망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전작 <달팽이의 별>(2012)의 주인공 영찬씨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이었으나 점화(點話, 손가락으로 손등에 점자를 찍어 대화하는 방식)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예지는 애초에 세상을 경험하지 못해 소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머니 김미영씨는 그런 예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 예지와 부딪힌다. 몸과 마음에 멍이 들어도 예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변함없이 커다랗다. <달에 부는 바람>의 언론시사가 진행되던 날, 이승준 감독과 예지의 어머니 김미영씨를 만났다.

-전작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중복장애인 영찬씨와 척추장애인 순호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였다. 주인공의 사정이 비슷하다보니 <달팽이의 별>과 <달에 부는 바람>이 연작처럼 느껴진다. 연작 개념으로 이 작품을 시작했나.

=이승준_<달팽이의 별>을 만들고 있을 당시 예지 가족을 처음 만났다. 영찬씨와 순호씨가 예지 가족과 아는 사이였고, 그들의 일상을 좇는 과정에서 예지와 예지 부모님을 뵙게 되었다. 그때가 2010년, 예지가 15살이었을 때다. 영찬씨를 만나고 어느 정도 시청각중복장애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예지는 너무 다르더라.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한정돼 있는데 예지와 부모님은 어떻게 15년이란 시간을 보냈을까? <달에 부는 바람>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다. 결과적으로 연작일 수 있겠지만 연작 개념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그때의 만남 이후 예지 생각이 났고 계속 마음이 가더라.

-예지와 부모님이 함께한 15년의 시간에 대한 궁금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이승준_예지와 가족들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져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언어(점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예지에게는 소통의 언어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예지와 가족들이 공감하고 교감하는지 알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관계라는 건 소통 없이, 교감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언어 이전에 그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뭔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작업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예지 사랑해. 왜냐하면 내 딸이니까.” 거기엔 그 어떤 수식어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설명하려 하고 머리로 이해하려 하고 언어로 분석하려 한다. 그런 걸 싹 걷어냈을 때 남아 있는 중요한 무언가, 그걸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예지와 어머니의 소통의 언어는 무엇인가.

=김미영_몸으로 부딪혀서 소통하는 거다. 원시 언어라고 할까.

이승준_그냥 느끼는 거다. 말이 없기 때문에 그 느낌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승준 감독이 예지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다고 했을 때 고민되진 않았나. 영화 작업에 동참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미영_예지는 특수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예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는지 수소문도 많이 해봤는데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교육이지 않나. 그런데 예지를 교육할 방법이 전무했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가족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교육할 방법이 없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다.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그러면 예지의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정을 공개하면 어디선가 교육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또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면 예지 같은 아이들이 생겼을 때 그들과 그 가족은 시행착오를 덜 겪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영화 작업에 동참하게 됐다.

-예지 가족이 카메라를 불편해하거나 의식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촬영 전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을 것 같다.

=이승준_나는 촬영하는 감독이고 당신들은 찍히는 대상이다, 그렇게 구분해서 가면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 서로가 불편하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 자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자 목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지와의 소통에 대한 열망은 어머니뿐 아니라 감독님 또한 컸을 것 같다. 예지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짐작하기 힘든 세상이고, 감독님은 그 알 수 없는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이승준_어머니와 처음 인터뷰했을 때, 어머니는 예지를 3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10%나 이해할 수 있을까. 예지를 이해하는 과정은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지와 인사도 해봤지만 나를 만져보더니 ‘당신은 우리 가족이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곤 저리 가라 그러더라. 나는 예지에게 ‘노바디’인 거다. (웃음) 물론 쉽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어머니는 예지를 알고 있다. 그 부분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얘기한 것처럼 <달에 부는 바람>은 예지의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의 이야기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이승준_촬영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예지 부모님이 촬영에 대한 고민이 크시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바로 승낙을 해주셨다. 언제든지 와서 촬영하라면서. 어려서부터 예지를 데리고 가족 여행도 많이 다녔다는 얘기도 해주셨는데 그런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굉장히 선하다. 가족이 모두 그렇다. 천성적인 선함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식물 키우기, 화분 가꾸기다. 예지를 돌보지 않을 땐 늘 정성들여 식물을 돌본다.

=김미영_봄이 되면 꽃이 피는데,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서 꽃화분을 사가지고 온다. 꽃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닌데 무조건 좋아서 데리고 와 키운다. 그게 그냥 좋다.

이승준_예지가 속 썩이고 고집 부릴 때 ‘나는 너보다 꽃이 훨씬 좋다’ 그러기도 하셨다. (웃음) 말만 그러시는 거지만. 그리고 꽃 가꾸고 화분 가꿀 때 무척 평온해 보인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예지가 웃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그것에 큰 희망이 아니라 작은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김미영_욕심 같아선 헬렌 켈러처럼 키우고 싶었다. 예전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여건을 갖출 수 없었다. 가진 게 없어서 마음껏 뒷바라지를 해줄 수도 없고, 우리나라의 교육환경도 좋지 못하고, 좋은 선생님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안타깝고 마음 아팠다. 이제는 그런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무작정 큰 희망을 갖는 것은 욕심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이가 커가면서 스스로 깨닫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만큼 성장했구나라고 확인한다. 그런 모습들이 값지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현재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한 신작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이승준_브로커한테 속아서 남한에 왔고 남편과 딸이 있는 평양에 다시 돌아가길 희망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가제는 <그림자 꽃>이고 지난해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