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KBS2 금요일 밤 11시 >
매주 금요일 저녁이 되면 잠자리가 뜨거워진다? KBS2TV에서 11시에 방영되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연출·극본 장성환)이 불러
일으키는 이혼공방 탓이다. 벌써부터 온라인 게시판은 이혼 찬반에 관한 갖가지 논의로 시끌벅적해졌다. 그렇다면, 부부클리닉은 개원 목표를
일차 달성한 셈이다. 입 밖에 내기 힘든 부부문제를 양지로 끌어냈으니까. 이 프로그램은 이혼법정을 향하는 부부들의 이런 사정, 저런 사례를
극화한 드라마와 이들의 이혼에 관한 시청자들의 ARS찬반투표, 그리고 이혼관련 조정위원회의 조정과정과 조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보는이로
하여금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빠져들거나 참견할 구석들을 애초부터 만들어 놓았으니까, <사랑과 전쟁>은 시청자들 사이에 작은 ‘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싶다고 선언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건 논쟁의 효율성, 실용성이다.
다른, 실제와 너무나 다른 조정위원회
사실 부부문제를 포함한 가정문제와 청소년 문제 등을 소재로 드라마를 꾸미고 토의형식을 곁들인 콘텐츠는 그동안 꾸준히 존재해왔다. 그간 방영된
바 있는 <드라마 게임>이나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사랑과 전쟁>이 특별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희박해보인다.
그러나 현재 69회분(3월2일 기준)의 방송이 나간 <사랑과 전쟁>은, 심야 방송시간대와 주간 방송프로그램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 1회
때부터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해오다 현재 최고 27%라는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혼집단(부부라고도
불리는)의 이혼 사례에 대한 ‘리얼한’ 보고에 있다. 단지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 실제 사례를 극화했다는 사실말고도 이혼 법정의 문턱까지
가지 않으면 만나볼 도리가 없는 실존하는 조정위원회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형식적 리얼리티까지 갖춘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때로는
드라마의 사실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먼저 조정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이 너무 과장되거나 왜곡됐다는 것. 조정위원회는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소를 제기하기 전 거쳐야하는 곳이다. 현실속의 조정위원회가 이런 부부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십몇분 밖에 되지 않는다는고
관련자들은 말한다. 세세한 질문을 던지거나 부부의 하소연성 발언을 듣기보다는 소장에 적힌 상황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 <사랑과 전쟁>의 조정위원들과는 모습이 다르다. 예컨대, 24화 ‘간통’편에서 조정위원장 신구 판사는 “판사로서가
아니라 그냥 세상을 좀더 산 연장자로서 하는 얘깁니다”로 시작되는 하는 심금을 울리는 발언을 하는데, 이건 실제상황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보너스'라는 얘기다. 여성학자와 정신과 전문의 자격으로 등장하는 두 조정위원에게서는 ‘의외로’ 전문적인 소견을 듣기가 힘들다. 그들이
내리는 진단과 처방이란 일반인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종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역시 ‘전문가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야.
‘성의 노예’가 되어 버린 부부?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연출자가 부부의 문제를 단지 ‘성문제’로만 국한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선정적 소재로 시청률을 높이려는의도라는 식의 상투적 해석과 논란을 피할 도리가 없어진다. 그간 방영된 내용을 이혼사유별로 살펴보면 불륜을 포함한 성적 부조화가 50%가량으로
압도적이다. 그 밖에 동서지간 불화, 도박, 술과의 전쟁, 학력차이, 처가살이, 동창회, 스토커, 성형수술, 매맞는 아내 혹은 남편, 동성동본,
새엄마 등이 뒤를 잇는다. 그야말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그리고 그 문제로 이혼의 위기까지 다다른 모든 부부들이 소재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텐데 유달리 ‘성의 노예’가 돼버린 부부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실 성문제는 부부관계에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는 부부간 성문제가 단지 이불 속 불만이나 속궁합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 불평등이 빚어내는 사회병리적인 문제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범위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불행하게도 그런 문제들을 잘라내고,
성문제로 모든 화제를 수렴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최근 방영된 67화 ‘강한 남자’가 그 좋은 예. 여기 등장하는 아내는 남편의 호언장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하루 세번’의 성행위을 매일 강요하다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받는 역으로 그려지는데, 실상 그녀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부증’이었다.
그런데도 과도한 성생활에 따르는 이혼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은 흘려듣기 어렵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묘사도 간혹 지적되는
부분이다. 26일 방영된 ‘부부의 성’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은 현재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비해 수준 미달인 판단력을 보여주는 등 인물묘사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외피와 내면이 그렇게 다른 경우가 적지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해도 인물묘사는 더욱 치밀했어야 했다. 남편이 암에
걸린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이혼이냐, 아니냐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 무리한 설정처럼 비친다.
그리고, 이혼 찬반투표라…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드러내 재구성해 보여주고 이를 화해, 조정하는 클리닉 과정을 통해 결혼의 진정성, 도덕성을 모색하고
사회적 담론을 이끌며 성 주체성의 건강한 회복을 도모하여 부부 재발견 및 건강한 가정을 위한 공존의 룰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거창한 기획의도로
출발한 <사랑과 전쟁>은 얼마 전 여성부로부터 남녀평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여성단체로부터 여성의 역할이 대체적으로 올바르게
그려지고 있다는 데 대한 공로도 톡톡히 인정받았다. 그러나 연출진들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는 ‘클리닉’의 과정은 점차 그 비중이 줄고 그
자리를 자극적인 내용의 드라마로 채우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잘못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문제에 따른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해결점이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구체적인 치료 과정을 보여주거나 소개하는 것 말이다. 해결점이
‘단지 이혼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한 가지 더, 위의 기획의도에도 불구, 드라마가 끝난 뒤 실시하는 이혼 찬반투표는 어쩐지 맥락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손끝에서 결정되는 이혼이라….어쩐지 좀 전의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혼 찬반투표 결과가 단지 예측을 넘어서는,
다수에 의한 ‘강요’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지적은 그래서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혼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부르짖던 조정위원들의 표정이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제공 KBS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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