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켜주세요] 부산을 상실할까 두려운 이유
정하담(영화배우) 2016-05-24

정하담 배우

<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주의 지지자는 배우 정하담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데뷔작 <들꽃>(2014)과 <스틸 플라워>(2015)로 관객에게 ‘배우 정하담’의 이름을 알린 만큼 그 애정은 큽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상영작 <스틸 플라워>로 부산을 찾은 정하담(왼쪽에서 세번째).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영화를 보러와 해운대에 걸린 대형 영화 포스터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들꽃>(감독 박석영)은 내 첫 영화였고 <들꽃>이 초청받은 첫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였다. 그전에는 영화제에 가본 적이 없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해봐도 감이 안 잡혔다. 그저 어렸을 때 가봤던 춘향제 등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서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축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기사로 보던 레드카펫 사진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가는 부산영화제는 그 부산영화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 레드카펫 위를 걸어야 한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누군가가 ‘신인 여배우의 굴욕. 이름이 뭐예요?’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고 거기에 오른 내 사진이 기쁘고 신기해서 며칠을 들여다봤다. 영화제에 온 누군가는 나에게 “첫 영화로 부산영화제에 오다니 하담씨는 이 소중함을 아직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나는 부산영화제에 와서 행복한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얘기했다. “저는 부산에 와서 처음으로 인터뷰도 했고요. 영화도 공짜로 보고 관객과의 대화도 하고 다 너무 특별하고 좋은데요.”

두 번째 영화 <스틸 플라워>(감독 박석영)가 다음해 부산영화제에 간다고 했을 때 내가 느낀 기분은 조금 달랐다. 너는 소중함을 모를 거라고 얘기하던 그 사람은 아마 자신이 부산영화제에 오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내게 얘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스틸 플라워>의 하담을 연기하면서 내가 느낀 고통이 있었다(감독님은 내게 잘해주셨다). ‘이 영화를 내가 망치고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 찍고 나서도 감독님과 얘기하는데 편하지가 않았다. 거기서 벗어나게 해준 건 부산영화제였다. 부산영화제에 간다고 했을 때 속상한 마음이 괜찮아지고 그 누구의 말보다 위로가 됐다. ‘올해는 더 재밌게 놀아야지.’ 영화제 시작을 손꼽아 기다리며 돈을 모았고, 부산에서 행복하게 꽉꽉 채운 열흘간의 일정을 보냈다. 해운대 앞 포스터에 걸린 내 얼굴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 앞에서 스탭, 가족, 친구와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독립영화를 본 게 고등학생 때였다. <똥파리>(감독 양익준, 2008), <아름답다>(감독 전재홍, 2007) 등의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와 유명한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 영화들을 보고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으나 잊히지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친구와 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산책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뭔가 멋진 것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속 세상이 잊히지가 않아서 멋져지는 것 같았다. 자려고 누워서도 친구와 밤새 얘기하기도 했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진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얘기를 나누다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사감 선생님에게 주의를 듣기도 했었다. 기숙사 학교였던 까닭에 우리는 새벽에 기숙사를 탈출해서 몰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친구와 이런 건 우리도 만들겠다 하고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깔깔거리면서 좋아했었다.

영화에 대한 내 시작은 어쩌면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다른 영화들도 보고 알고 있다는 느낌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것 같다. 그때의 관심이 영화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부산영화제를 잘 몰랐지만 내가 봤던 영화들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질까봐 나는 무섭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