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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진화된’ 성차별주의
이다혜 2016-05-23

<배드 걸 굿 걸> 수전 J. 더글러스 지음 / 글항아리 펴냄

5월17일 새벽, 강남역 대로변에 위치한 상가의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3살 여성이 칼에 수차례 찔려 살해당했다. ‘묻지마 범죄’라고 언론에서 보도된 이 사건은, 범인인 30대 남성이 1시간 넘게 여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며 흉기로 쓴 칼을 전날 준비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라 부르는 게 맞다. 남녀를 불문해 범행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한다. (여성혐오가 아니라) 남성혐오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 기가 죽은 남성이나 여성에게 무시당하는 남성을 근심하는 기사들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매체는 여성의 해방이 기정사실이고, 여성이 실제보다 더 강하고 유능하며 성적으로 주도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보다 더 대담하고 존경을 받는다고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한다.”(<배드 걸 굿 걸>) 미디어가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통해 대단한 ‘여풍’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과 달리 현실의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고, 남성보다 범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리고 미디어 속 여성의 이미지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그 방식이 교묘해졌을 뿐. 수전 J. 더글러스의 <배드 걸 굿 걸>은 미국 미디어가 보여주는 ‘진화된’ 성차별주의를 진단한다. 이제 드라마나 예능 프로의 여자들은 섹스에 당당하고, 큰돈을 벌고, 남자보다 더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현실과 다를 뿐 아니라 여성에게 능력과 아름다움, 남성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전부 요구한다는 점에서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 리얼리티 쇼가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을 분석한 대목에는, 최근 전•현 걸그룹 멤버들이 국제 정치, 역사, SNS에 올리는 사진으로 뭇매를 맞고 사과하거나 악플을 감수하는 상황이 겹쳐 보인다. “여성은 무엇보다도 외모로 판단되어야 한다. 여성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관계에 집착한다. 여성은 섹시해야 하지만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이 될 수 있는 최악의 존재는 악녀다. 강한 여자도 악녀, 부유한 여자도 악녀다. 가사 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영역이다.”

이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노화도, 출산 이후 망가진 몸매도 용서받지 못한다. 여성은 스스로를 평가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개그 프로에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농담에 따라 웃는다. 강남 살인사건의 범인은 목사를 꿈꾸는 신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술집이 얼마나 대로변에 있는지, 변을 당한 화장실을 같이 쓰는 ㅅ노래방이라는 곳이 얼마나 크고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인지, 죽은 여성은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미디어는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미디어의 이런 보도 행태를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정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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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된’ 성차별주의 <배드 걸 굿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