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마션>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건 화성의 적막함도,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도, 그 사이를 맴도는 기묘한 낙천성도 아니었다.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어디선가 날아온 파편에 부상을 입고 화성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라면 저 상황에서 며칠 못 버티고 죽었겠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와트니는 훌륭한 과학자였다. 해서 나사(NASA)와 연락을 취하는 데 성공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게 해줄 작물도 길러낸다. 줄이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영화를 보았든 보지 않았든 간에 화성에서 생존하기가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알 것이다. 하나의 물 입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산소 둘에 수소 하나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화성 탐사대원이 될 수도 없겠지만, 여차해서 화성에 간다 하더라도 <마션>의 주인공처럼 물을 만들기는커녕 실수로 물 아닌 것을 잘못 마시고 죽을 확률도 제법 클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지구에 살고 있었으므로 <마션>은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기억 속에서 잠시 사라졌던 이 영화가, 연이어 보도되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뉴스를 보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그 제품을 쓰지 않았던 건 순전히 집에 가습기가 없어서였지만 만약 가습기를 사용했더라면, 누군가의 건강을 지켜주고 싶었다면, 깨끗한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면, 나도 살균제를 장바구니에 담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지구인이니까. 그런데 나는 지구인인데, 왜 지구가,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척박한 화성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저 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의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살아남으려면 대체 어떤 생존기술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영화 <그래비티>를 최근에야 보았다. 역시 기본적으로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임무 전문가 스톤(샌드라 불럭)은 사정없이 날아오는 위성 파편들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사력을 다해 도착한 우주정거장에 화재가 발생하고, 지구 귀환용 소유스호에는 연료가 없다. 그곳을 탈출해 가까스로 중국 정거장에 도착한 스톤은 또 다른 고난과 마주친다. 우주선 내부의 버튼들이 전부 중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잘못된 버튼을 누르고 죽었겠지. 운이 아주 좋다면 모르겠지만. 운이 아주, 아주 좋다면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