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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영화감독은 가슴 한켠에 품어둔 꿈같은 일”
이예지 사진 최성열 2016-04-25

<라이트 마이 파이어> 직접 각본 쓰고 연출한 배우 남궁민

배우 남궁민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단편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출품했다고 했을 때, 모두가 적잖이 놀랐다. 귀공자 같은 외모로 브라운관에서 여심을 훔쳐왔던 배우가 연출가로서의 야심을 남몰래 품고 있을 줄이야. 돌이켜보면 그가 연기자로서 남긴 족적은 꽤 인상적이었다. 김기덕의 <나쁜 남자>(2002)에서 ‘선한 남자’로 얼굴을 알린 그는 <비열한 거리>(2006)에서 비열한 영화감독을 연기하고, <뷰티풀 선데이>(2007)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고뇌하는 인물을 맡으며 선과 악을 오가는 연기가 가능한 배우임을 입증했다. 그는 각종 트렌디 드라마에선 ‘실장님’ 전담 배우로 활약했고, 지난 2월 종영한 <리멤버: 아들의 전쟁>(2016)에선 분노조절장애의 재벌 후계자를 맡아 여태껏 본 적 없는 악역을 연기했다. 연기자로서 터닝포인트를 돈 지금, 그는 숨겨왔던 연출 욕심을 드러냈다. <라이트 마이 파이어>로 연출자로서의 욕망을 발화한 남궁민을 만났다.

-직접 <라이트 마이 파이어>라는 단편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원래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이 있었나.

=연기하는 게 내 직업이라면, 영화감독은 가슴 한켠에 품어둔 꿈같은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생과 함께 영화를 참 많이 봤다. 청소년 시기엔 공부하며 방황도 했는데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나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어 좋았다. 동생 남궁윤은 영화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로, 나중에 커서 남궁민과 남궁윤만의 스타일이 있는 영화를 같이 해보자고 얘기하곤 했다. 동생은 지금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끼가 많다. (웃음) 동생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틈틈이 써서 보여줬는데 이 단편이 괜찮다더라. 연기자로서의 자리매김도 어느 정도 한 지금, 단편을 한편 찍어봐야겠다 싶었다. 지난해 8월, 중국영화 <월색유인> 촬영이 한두달 밀려 짬이 난 새에 서둘러 찍었다.

-스릴러 장르인데, 어떤 이야기인가.

=한 형사가 미제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편의 개념과는 좀 다르다. 보고선 ‘2탄은 언제 나오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여기까지다. (웃음) 단편은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인 경우가 많지만 나는 보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지향하나.

=스토리가 있는 스릴러물과 액션물을 좋아한다. 한국영화로는 <살인의 추억>과 <달콤한 인생> 같은 스릴러를 좋아하고, <다이하드> <스내치> <쎄븐> 등 다양한 할리우드영화의 팬이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재미있는 게 곧 대중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 시리즈는 반복되는 패턴과 캐릭터들이 유치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예술성을 발견해낼 수 있듯이 말이다. 나와 동생이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만큼은 모든 걸 잊고 즐거워했듯이, 내 목표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다.

-영화 연출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겠다.

=이젠 감독님들이 나와 동년배거나 더 어리기도 한데(웃음), 그들과 친하게 지냈던 게 도움이 됐다. 급히 연출부를 짜서 헌팅을 다녔고, 캐스팅을 했고, 2회차 안에 다 찍었다. 사실상 제작과 연출을 혼자서 한 거고, 연출부도 도와주는 개념 정도였다. 편집도 편집 기사님과 함께 붙어서 했고, 사운드 작업 하나하나에도 신경 썼고, 번역가 섭외부터 자막 싱크 맞추는 것까지 직접 했다. 배우보다 훨씬 어렵더라. (웃음)

-오정세, 이동휘, 양주호 등 캐스팅이 탄탄하다.

=처음엔 주인공을 직접 할까 하다가 감독 입장에서 봤을 때 캐릭터와 배우로서의 남궁민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인공 형사 역은 너스레도 떨 수 있고, 생활 연기를 잘하는 배우여야 했다. 그때만 해도 이동휘가 인지도가 높진 않았는데(웃음),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연기를 할 줄 아는 친구라 잘될 것 같더라. 다짜고짜 번호를 알아내 대본을 보내줄 테니 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오정세는 어디에 끼워놔도 그림이 나오는 배우다. 거절한 분 없이 1순위로만 캐스팅이 된 걸 보니 내가 여태까지 배우 생활을 잘해왔구나 싶다. (웃음) 유일한 신인인 진아름은 오디션으로 뽑았다. 피해자 역할로, 얼굴은 덜 알려져 있되 느낌 있는 배우였으면 했다. 연출부는 다른 배우를 추천했는데,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가장 열성적이었다. 감독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 생각을 밀고 나갔다. 님도 보고 뽕도 딴 셈 아니냐고? … 어쨌든 결과는 마음에 들게 나왔다. (웃음)

-배우로서 감독에 도전했는데, 연기 디렉팅은 어땠나.

=배우이기 때문에 감독이 어떻게 주문해야 연기가 나오는지 아는 편이다. 연출자의 시점으로만 접근해서 요구하면 연기자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연기가 잘 안 나올 수도 있다. 어떨 때 내가 경직됐는지를 생각하면서 디렉션을 줬다. 이동휘는 최대한 편하게 하라고 해서, 그만큼의 자유를 줬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달라 편집실에서 애먹긴 했지만. (웃음) 오정세는 심각한 연기 속에 해학이 있는 배우인데, 웃음을 유발해 달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일부러 웃겨달라고 하지 않았다.

-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출품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제 하면 칸 아닌가. (웃음) 때마침 영화를 완성한 시기가 맞아서 출품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선 15분 이하의 러닝타임을 요구해서 21분짜리를 15분으로 줄였다. 엊그제 최종 편집본을 만들었더니 17분50초가 나왔다. 부족한 점이 많아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웃음) 기대는 정말 안 하셨으면 좋겠다. 첫 연출이다, 시간이 없었다, 환경이 열악했다, 시작할 때 스토리가 완성되진 않았는데 일단은 단편으로 찍고 싶었다 등 변명을 찾다보면 너무 많은데, 변명을 하기보다는 먼저 보여드리고, 관객의 평가를 받고 싶다. 이후 어떤 플랫폼으로든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할 거다.

-장편 시나리오도 작업 중이라고 들었다.

=<죽은 물고기>라는 작품을 각색 중이다. 혼자 2년 정도 쓰다가 작가와 1년째 각색 중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범죄스릴러로, 여러 캐릭터들이 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또 한편은 청춘 로맨틱 코미디로, 완고를 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작될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 좋은 기회가 생길 때를 대비해 준비 중인 거다.

-본업 얘기를 하면, 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이코패스 ‘남규만’역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분노조절장애가 생긴 것도 같다고 했는데.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찌질이’다. (웃음) 연기를 할 때 최대한 몰입하는 편이다. 어떤 작품을 하든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원래는 감정을 절제하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는데 이렇게 마구 분출하는 역할은 처음이라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몰입했더니, 애드리브가 폭발적으로 나오더라. (웃음)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남규만이 되어 말을 하면 대본과 얼추 맞을 정도였다. 골프채로 차를 부수는 신의 대사들,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나오지 마요, 다치니까” 같은 것들도 전부 애드리브였다. 이걸 찍고 나도 모르게 욱하는 면이 생겼는데, 지금은 역할에서 많이 빠져나왔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는 치밀한 두 얼굴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역할을 했다. 살인마만 연달아 두 번째다.

=권재희는 차갑고 절제된 인물이라 어렵지 않았다. 둘 다 나쁜 놈이지만 정반대의 인물이다. 최근엔 살인마만 맡아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데, 한때는 착한 역할만 했었다. (웃음) 초반 드라마 <장미 울타리> 등을 할 땐 ‘남궁민이 나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소리도 들었는데, <비열한 거리>와 <뷰티풀 선데이>를 하면서 선과 악을 오가는 면모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그 후엔 기업 후계자니 CEO니 하는 ‘실장님’ 계열을 많이 했고. (웃음) 그때그때 시대가 요구하는 남자 캐릭터상들이 있다. 드라마에 ‘실장님’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시기가 있었고, 최근엔 극단적 악역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차기작 드라마 <야수의 미녀>와 중국영화 <월색유인>에선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나.

=이번엔 다시 착한 모습이다. (웃음) 인권 변호사 역할로, 장난스럽지만 선한 캐릭터다. 여주인공인 민아와 티격태격하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월색유인>은 부부의 집에 강도가 든 후, 남편과 아내가 당시 보인 태도에 따라 멀어져가는 이야기다. 감성적이고 미묘한 결을 표현해야 하는 영화라 어려웠다. 그런데 상대배우 위난이 워낙 베테랑이라 잘 이끌어줬고, 막상 연기를 하니 중국말이 한국말로 들리더라. (웃음)

-앞으로 배우와 감독을 겸할 건가.

=우선은 본업인 배우로서 충실할 거고, 쉬는 시간엔 시나리오를 꾸준히 쓸 거다. 배우로서는 장르와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하는 게 우선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그 속의 인물은 어떤 캐릭터든지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지. 감독으로서는, 내가 보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하게 친절하고 설명적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색깔이나 정체성을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부끄럽다. (웃음) 막 단편 하나를 찍었을 뿐이고, 이제 시작이니 지켜봐달라.

단편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

변사체가 발견된 후, 한 형사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낸 범죄수사 스릴러다. 17분 분량의 단편영화로, 배우 남궁민이 연출한 첫 영화다. 제목 <라이트 마이 파이어>는 도어스의 노래에서 차용해온 제목으로, ‘내면의 욕망에 불을 붙인다’는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으로 붙였다. 남궁민은 “모든 사람들에겐 다양한 욕망이 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건 내 욕망이고, 또 어떤 이에겐 이유가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욕망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도 그런 욕망의 발화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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