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세계를 내심 기다리기 때문일까. 그림책 하면 흔히 상상 너머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릴 만큼 저명한 권위를 자랑하는 칼데콧에서 대상을 차지한 <위니를 찾아서>는 판타지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곰 ‘곰돌이 푸’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만화 속 캐릭터’보다는 ‘실존’에 더 무거운 의미를 두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펼친다.
수의사였던 해리 콜번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고향 위니펙을 떠난다, 그는 기차역에서 사냥꾼에게 잡혀 있는 새끼 곰을 데려와 고향 이름을 딴 이름을 붙여준다. 위니는 부대의 마스코트로서 군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만, 해리는 결국 위니를 런던 동물원에 맡긴다. 여기까지는 사랑스럽되 그리 특별하게 와닿진 않는 이야기. 하지만 저자 린지 매틱은 더 나아가 곰을 좋아하는 아이 크리스토퍼 로빈이 위니를 만나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위니가 곰돌이 푸로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잇는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화자인 자신과 그 말을 듣는 아들 콜이 모두 위니와 닿아 있다고 말하며 맺는다. 사람들을 사로잡은 이야기가 실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메시지는 ‘사실’의 힘을 강조하며 성인 독자에게도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유독 마음에 남는 이미지가 있다. 가족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모습이 담긴 두 그림이 그것이다. 각각 이야기의 초반과 후반에 놓인 이 그림은, 전시를 배경으로 하되 전쟁의 처참한 풍경에 애써 시선을 돌리지 않는 <위니를 찾아서>의 또 다른 얼굴을 선연하게 나타내고 있다. 7명의 군인을 태운 기차에선 군인 세명만이 돌아왔고, 그마저도 두 사람은 다리 하나가 없거나 붕대를 감고 있다. 텍스트는 이 풍경을 묘사하지 않지만 (<루비의 소원> <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를 그린) 소피 블래콜의 그림은 정확히 같은 구도를 반복해 두 이미지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전쟁의 상흔을 보여준다. 책 끝 부록에 실린 인물들의 실제 흔적은 <위니를 찾아서>가 지향하는 사실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위니가 곰돌이 푸로 탄생하는 과정
“사냥꾼은 무슨 일을 해요?”
콜이 물었어요.
“곰을 데리고 다니는 건 사냥꾼이 하는 일이 아니야. 사냥꾼은 곰을 기르지 않아.”
“곰을 기르지 않는다고요?”
“그래. 사냥꾼은 곰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끝이에요?” 콜이 물었어요.
“응, 해리 아저씨와 위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엄마가 대답했어요.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콜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어요.
“가끔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야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단다.”
“다음 이야기는 언제 시작돼요?”
“글쎄. 그건 이야기를 계속 들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