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는 다비드 메나셰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다. 과작이 그의 뜻은 아니었다. 책을 내놓는 것 역시 그가 그렸던 미래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을 ‘선생님’으로 살았다. 마이애미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2006년 돌연 뇌종양 말기 선고를 받았지만 교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때에도 학생들 곁에 남았던 선생은 두눈이 멀고 몸 왼쪽이 움직이지 않고 나서야 학교를 떠났다. 물론 그의 걸음은 죽음을 천천히 기다리는 병실로 향하지 않았다. 다비드 메나셰는 옛 제자들을 찾아 떠나, 101일 동안 31개 도시를 거쳐 75명의 제자를 만났다. 그 여행에서 그는 자신이 교사로서 힘주어 말했던 가치들이 아이들의 삶에 어떻게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비드 메나셰의 여행기에서는 고행을 읽을 수 없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진행한 강행군이지만 작가는 육체의 고통을 토로할 새 없이 그것이 삶의 치열한 흔적임을 확인하며 방문을 이어나갔다. <삶의 끝에서>에는 101일의 여정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 ‘교사’ 메나셰를 만들고 지탱했던 순간들도 소환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회고는 바깥으로 향해 독자로 하여금 절절한 깨달음을 전해주지만, 이 책은 철저히 작가가 스스로를 되새기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아무리 깨끗한 마음으로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전한다 해도 가르치겠다는 뜻이 먼저 보인다면 대화에 한계가 끼어들기 마련. 다비드 메나셰는 자기를 돌아보는 방식을 택해, 계몽보다는 공감으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생전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의 일정과 안부를 알렸다. 업데이트가 멈춘 페이지에는 ‘FUCK CANCER’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끝내 건강한 모습만을 전했던 선생님의 뜻이 고스란히 남았다.
<삶의 끝에서>는 다비드 메나셰가 제자들과 함께 쓴 책이다. 선생의 회고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흔적은 물론, 두 챕터마다 하나씩 그가 방문했던 학생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저마다의 인생을 사는 이들은 각자 다른 말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초월해 오래도록 남을 것에 인생을 바친” 메나셰 선생님을 기억한다.
계몽보다는 공감으로
주말 내내 “얘들아, 선생님이 암에 걸렸단다”로 시작되는 연설을 연습하면서, 문득 보조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다. 재미난 소도구를 사용하면 ‘암 선고’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주는 공포를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33쪽)
교실은 발견의 장이며, 우리는 바로 그 교실에서 글로 쓴 언어와 자기표현의 중요함을 서로에게 가르쳐주었다. 또한 교실은 우리가 인간애를 펼쳐 보이고 건강한 개인간의 관계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잃어버린 옛 기억이 남긴 공간에 새로운 기억을 채워넣고픈 욕구가 너무 강했다.
학생들은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나와 공유하면서, 그리고 그 기억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면서, 자신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내게 살아갈 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