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예전처럼 큼직한 신문을 한면씩 넘겨가며 읽는 재미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때마다 독버섯처럼 튀어나오는 흉한 광고 배너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컸다. 구독을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버스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천 경쟁이 시작되었고, 며칠 그러는가 싶더니 이제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러는 동안의 신문 읽기란 정말이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물론 문화 면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광고들(정표로 담뱃불을 받았다며 성춘향 닮은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며 간통법 폐지를 바라보며 끝날이 오고 있다고 외치는 어느 목사의 절규 등은 그래도 인터넷 신문사의 성인용품 광고보다는 볼만했다)은 일정한 수준의 재미를 보장했지만, 단순한 가십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선거 관련 기사들은 날마다 늘 똑같은 내용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내가 투표하기로 마음먹은 정당에 관한 기사는 며칠간 거의 한 꼭지도 등장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안건상정’을 ‘인지상정’으로 잘못 읽기도 했다. 내 무의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공약 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정 하나에 이끌려 투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 몇년간 보아온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재미있는 내용들은 신문 밖에서 접할 수 있었다. 재미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재미없는 내용들이다. 몇 년 전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씨와 나경원씨의 성별을 착각한 어느 보수단체에서 전자를 저격하며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현수막을 걸었다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기가 찼지만 이번에는 설상가상이다. 몇몇 후보들이 동성애 반대, 모슬렘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차별을 조장하겠노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후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후보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 것일까. 실은 지난 몇년간 날마다 설상가상이었으므로 더 놀랄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일은 아무도 놀랄 의지마저 보이지 않을 때 일어나기도 한다. 이 글을 마치기 전 다시 한번 찾아보니 ‘세월호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의 현수막 사진도 있다. 황당하고 참담하다. 공천 경쟁이니 계파간 갈등이니 탈당이니 야권 연대니 하는 기사도 좋지만, 내일자 신문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기사를 보고 싶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