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의 단편애니메이션 <디어 안젤리카> 포스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올해 초에 열린 선댄스영화제 스토리텔링 포럼 행사에 참여해 VR과 영화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게임이 영화를 죽이지 않은 것처럼 VR 역시 상호 보완 관계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확실히 VR은 보통의 영화가 줄 수 없는 감각의 충격을 안겨준다. 먼저 사각의 스크린이 없기 때문에 관객이 한번에 받아들일 시각 정보가 많아지고 관객은 사실상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생한 현장감 혹은 몰입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기술을 도입한 영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미 많은 단편영화들이 VR의 영화화를 본격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대부분 고민하는 지점은 이야기다. 영화는 제한된 시간 안에 정해진 플롯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영화의 고유의 방식이기 때문에 SF나 호러, 액션 어드벤처 등 장르 요소를 차용하는 게임의 경우와 VR을 많이 비교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게임의 특성상 사용자는 아바타와 같은 캐릭터를 두어 스스로 액션을 경험할 목적이 뚜렷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형식을 통해 인물의 행동을 관조하고 감정에 이입하면서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을 과연 VR이 극복 혹은 구현해낼 수 있을까?
VR의 특성상 주어진 모든 상황을 관객이 직접 만들어내고 개척해나가야 하는 이야기라면, 결말이 정해져 있거나 혹은 몇개의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의 이야기 전개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VR 효과가 영화의 기존 전개방식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앵글의 활용 정도로 쓰일 뿐이다. 고정된 시간 안에서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끌고 가는 사례는 아직 없다.
물론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편의 VR영화를 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영화로 받아들이게 할 수도 있다. 정해놓은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게임 서사의 구조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이야기는 동일하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시점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상상해보건대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이동하거나 혹은 선택함으로써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 있고 배경이나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 혹은 영화의 카메라가 쉽게 보여줄 수 없는 시점의 방향성을 부여하며 이야기를 관조할 수도 있다. 결국 모두 다른 영화를 보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지난해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에서 제작 발표한 단편애니메이션 <디어 안젤리카>에서는 딸이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관객이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관객의 시각적 경험이 달라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고 있다. 보다 쉬운 선택으로는 기존의 영화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 형태의 배경 설명을 다루는 영화도 가능할 것이다.
또 영화와 마찬가지로 VR 역시 제약의 요소가 분명 있는데, 예를 들어 한번에 많은 시각 정보를 노출함으로써 오는 관객의 혼란, 물리적으로 360도 영상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없는 시야각의 제한 등은 VR영화의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장르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는 이와 같은 VR의 속성이 어떻게 적용될까.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따진다면 기존 다큐멘터리영화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프레임 밖의 상황, 혹은 편집이 개입되지 않은 영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