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성적을 내고서, 훌륭한 기량을 가진 축구선수가 별안간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할 때가 있다. 감독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플레이 스타일을 선수에게 고집할 때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반대로 선수에게 맞는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도 있다.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4-3-2-1)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그런 성향 덕분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4명의 수비수, 3명의 미드필드, 2명의 공격형 미드필드, 1명의 스트라이커를 세운 모양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똑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AC밀란 감독 부임 두 번째 시즌(2002~3) 개막을 앞두고 안첼로티는 히바우두, 후이 코스타, 세도르프, 피를로 등 세계 최고 미드필드 네명 중 한명도 벤치에 앉혀두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게 먼저”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세계 축구계에서 생소했던 이 포메이션은 시즌 내내 반짝거리며 AC밀란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카를로 안첼로티-카를레토 리더십>은 유벤투스, AC밀란, 첼시, 파리 생제르맹, 레알 마드리드 등 가는 곳마다 선수를 먼저 고려한 전술을 펼치며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우승 청부사 안첼로티 감독의 자서전이다.
우승 청부사라고 해서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안첼로티는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이탈리아 아저씨다. AC밀란 최고의 미드필드 중 하나였던 카카가 훈련장에 처음 나타났을 때 안첼로티가 모범생 같은 그의 외모만 보고 “자, 오늘 학교 안 간 건 엄마, 아빠께 말씀드렸니?”라고 말하려다가 공을 기가 막히게 차는 걸 보자 “오!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감탄한 일화는 감독 특유의 근엄과 거리가 멀다. 선수 시절, 그의 가족이 유벤투스와 계약한 사실을 믿어주지 않자 계약서를 꺼내 일일이 보여준 일도 꽤 소박하다. 그는 가는 팀마다 우승컵을 안겨줬고, 선수들은 그런 그를 진심으로 따랐다. 하지만 그를 배신한 건 언제나 구단이었다.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감독 경질을 쉽게 하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안첼로티를 해임할 때는 쉽지 않았다. 경질설이 언론에 나오기 시작할 때 선수들이 그의 해임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선수에 맞게 팀을 운영했기 때문이리라.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해임된 안첼로티는 다음 시즌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을 이끈다. 그는 펩 과르디올라 전임 감독의 유산을 어떻게 지워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