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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가난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2002-03-26

지난해 울산인권영화제 사전검열논란으로 상영거부한, 다큐멘터리 <밥·꽃·양> 3월30일 이대에서 상영 불순한 의도인가, 아니면 단순한 오해인가. 지난해 9월, 울산인권영화제(인권영화제와는 무관)는 개막을 앞두고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일부 장면을 문제 삼아 사전검열을 시도했다”며, 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상영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문제를 제기한 <밥·꽃·양>의 제작사 라넷은 9월7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상영을 거부합니다’라는 긴 글을 통해 “출처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어떤 문제제기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상영결정에 대한 논의가 한달이나 지난 시점에 와서 다시 고려해보고 상영해야 한다는 (영화제 집행위의) 발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에 영화제쪽은 “<밥·꽃·양>은 상영이 결정된 작품이 아니며” 또한 “(해당 작품에 대해) 사전검열을 진행한 적이 없다”는 답변으로 맞섰다. 불붙은 논쟁의 여파는 인터넷상의 공방으로 그치지 않았다. “외부의 문제제기로 인한 집행위의 상영유보는 사전검열로 판단된다”며 울산참여연대를 비롯한 영화제 참가단체들이 이탈을 선언했고, <애국자게임> <아시안 블루> 등 이미 상영작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들이 연이어 영화제상영을 거부했기 때문. 이와 맞물려 각종 사회단체들의 항의성명이 끝없이 이어지자, 영화제 집행위는 9월19일 “행사개최 시기를 무기한 연기한다”면서 동시에 진실을 가리기 위한 공동토론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후 집행위는 영화제 인터넷 게시판을 갑자기 폐쇄했고,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했던 울산인권운동연대 또한 “외압은 분명코 없었으나, 논란과정에서 정체성이 훼손된 만큼 활동을 당분간 중지하겠다”고 알리면서 진위여부는 사실상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그 논란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파업의 정치학에 묻힌 아지메들의 눈물3월30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두 차례의 <밥·꽃·양> 상영회에 주목하는 것도 그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노동자영상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은 상영 이전부터 얻은 원치 않는 유명세와 달리 볼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 “98년 여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수용과 그 과정에서 하청으로 밀려나버린 식당여성노동자 144명의 3년간의 투쟁일지”를 고스란히 담은 이 작품은 그동안 울산과 부산에서 한 차례씩 상영회를 갖긴 했지만, 이번처럼 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선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행사 역시 제작팀 라넷이 아니라 얼마 전 울산에서 ‘검열반대’를 외치며 1인시위를 벌이기까지 한 자발적 지지자들이 나서서 준비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생산적인 논의를 벌이기 위한 사전행사인 셈이다. 사실 <밥·꽃·양>이 무대로 삼은 98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그리 생소하지 않다. 이미 <열대야> <평행선> 등의 작품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36일 동안 벌인 싸움의 현장들을 맞닥뜨릴 수 있었기 때문. 그렇다면 <밥·꽃·양>이 외압이든, 자체검토든 간에 영화제 집행위를 곤혹스럽게 만든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단상에서 여성노동자의 발언기회를 빼앗는 문제의 장면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혹여 갑자기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할 군살’의 처지가 되어버린 여성노동자의 시선에 가감없이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은 아닐까. “투쟁의 ‘꽃’이었다가, 정리해고의 희생 ‘양’이 되어버린 ‘밥’하는 아지메”들의 성토를 온전히 담았기 때문은 아닐까.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는 파업의 정치학’에 대한 <밥·꽃·양>의 ‘흠집내기’와 ‘딴지걸기’가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명분과 대의에 떠밀려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소수자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밥·꽃·양>은 도입부에서부터 주저없이 털어놓는다. 노동조합이 마련한 수련회 자리. 남성노동자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끼어드는 가운데 여성노동자 한 무리가 앉아서 여기저기 들이댄 카메라를 향해서 토로한다. “석유통 한통씩 붓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울 거예요”라는 성난 여인의 목소리와 “밤늦게 집에 가면 내 마음에 없어도 (남편의 성적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또다른 여인의 한탄까지 모두 한데 뒤섞인다. 다른 카메라가 불쑥불쑥 끼어들 정도로 다소 엉성해뵈는 구도, 자막으로 대사를 처리할만큼 열악한 사운드의 조합인 것 같지만, 사람을 끄는 묘한 긴장감이 그대로 녹아 있다. 첫장면은 <밥·꽃·양>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생생한 현장감의 추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 <밥·꽃·양>의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배식구를 경계로 양쪽에 선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카메라는 동시에 포착한다. ‘똑같은 작업장’ 안에도 또 하나의 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짧은 인서트 장면을 통해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침묵의 벽을 깨기 위해 시도한다. 물론 3년 동안 ‘울산 아지메’들이 벌인 싸움에 접근하는 방식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연속되는 보고서 형식의 영상물을 통해 매번 다른 각도에서 환부를 들여다본다. ‘노사정합의와 국가경제’, ‘밥’, ‘파업의 심리학’, ‘우리가 텐트를 접을 수 없는 이유’, ‘사라지지 않는 과거’ 등의 소제목을 단 영상들은 뜨신 밥을 해먹이던 아지메들이 찬밥 신세가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구성에 있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대목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인 경과와 사건의 앞뒤 순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대신 <밥·꽃·양>은 “투쟁대오는 강고하였으나… 결국엔 자본과 공권력 앞에 스러지고 말았다”는 식의 단선적인 흐름을 따르진 않는다. 대신 ‘파업’과 ‘중재’와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그 안에서 개인이 느껴야 했던 심리적인 떨림과 압박까지 파고들어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일까.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의 비애는 단번에 ‘울컥’ 몰려오지 않는다. 한 아지메가 복직을 위한 단식투쟁 끝에 탈진했음에도 굳이 안 가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부터 노동조합 지도부가 정리해고안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한 노동자가 “노동운동, 그런 거 아닙니다”라고 잘라맺는 것까지, 군데군데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터져나온다. “이 영상보고서를 보는 동안 내내, 나는 북받쳐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아줌마들의 비통한 심정이 내 살과 영혼을 파고 들어 놓아주지 않았거니와, 그 비통함의 바닥에는 이 땅에서 여자로, 그것도 가난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의 잔혹하고 비참한 진실이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밥·꽃·양>과 마주했던 한 시인의 말이다. 현장에서 3년 동안 300개의 테잎에 담아 작성한 두툼한 보고서가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서울에서 공개상영된다. “지금껏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들, 이제는 말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이 한편의 보고서는 물론 제작진의 지적처럼 ‘미완성’ 작업이지만, 동시에 ‘현재진행형’인 작업이기도 하다. 상영문의http://larnet.jinbo.net, www.babsamo.com이나 051-731-3782이영진 anti@hani.co.kr<사진설명 1>목숨을 내건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던 현대자동차 식당 여성노동자 144명. 그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공장 라인에 다시 선 또다른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지우기 어려운 상흔으로 남아있다. <사진설명 2>식당 아지메들은 강했다. 회사와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목숨을 내건 단식투쟁을 하면서 탈진하기 일쑤였지만, 쉽사리 병원행을 택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처절한 생존에의 욕구였다. ▶ <밥·꽃·양> 감독 임인애, 서은주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