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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다룬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과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에 대하여, 그리고 시인 송경동과 뮤지션 송재경이 말하는 ‘그날 이후 달라진 것들’

고백하자면 세월호 2주기에 부치는 이 글을 준비하면서 많이 괴로웠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 앞에서 이 작은 지면에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몰라 앞이 캄캄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침몰의 원인도 참사의 책임자도 여전히 알 길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참사 이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왔나.’ 이 자문 앞에서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이름을 남기고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천막 주변을 지날 때면 공연히 고개를 숙이는 게 고작이었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의 개봉 지원 소셜 펀딩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참여한 것으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부지불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면서 세월호 2차 청문회를 지켜봤다. 참사 당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라는 선내방송이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진술이 나왔다. 해경과 해양수산부가 운영한 진도•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가 교신 기록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청해진해운과 국가정보원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증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검사 수사 요청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어째서 또 하루는 이렇게 부끄러워져야만 할까.

원고 마감일을 코앞에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의 시네토크 현장을 찾았다. ‘역사를 기록하고 서술하는 주체로서의 다큐멘터리’가 그날의 주제였다. 그곳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의 경순 감독을 만났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2000년 10월16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02년 10월16일 활동이 종료되기까지 그 과정의 기록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합류한 민간조사단이 그토록 밝히려 한 건 독재정권 시절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된 후 실종돼 변사체로 발견된 이들의 죽음의 이유였다. 조사단은 수개월 동안 밤낮없이 수많은 자료들을 뒤졌고 증인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들은 좌절했다. 자료는 말도 안 되게 제한적이었고, 정부는 조사단에 비협조적이다 못해 적대적이었으며, 관료 시스템은 경직돼 있었다. 의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는 절박한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민간조사단이다 보니 조사권의 한계도 뚜렷했다. 의문사로 인정받기보다 조사 불가로 처리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유가족들은 묻고 싶었다. 왜 학교에, 군대에 보낸 자식이 하루아침에 주검이 돼 돌아와야 했는지. 누군가의 죽음에 답해야 할 사람들은 침묵했다. 영화에서 경순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찍는 내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되묻는 습관이 생겼다. 죽은 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에 말뿐인 나라. 난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그때의 의문사와 세월호 참사 사이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사람이 죽었다. 왜 묻는 자는 있으되 대답하는 자가 없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되뇌어본다. 그리고 ‘기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진실을 밝힐 일말의 단서를 찾기 위해 달려든 민간조사단, 그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경순 감독. 이들은 기록의 재해석과 해석할 기록을 만들어왔다. 비록 그들이 이룬 성취가 미미하다 해도 미래의 누군가는 이 기록들을 통해 과거를 묻게 될 것이다.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뭔가를 영원히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그 기억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창조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타인의 고통>의 수전 손택의 글을 읽어본다. ‘기억의 갱신’을 위해 기억은 기록돼야 한다. 그것이 영화가, 영화를 말하는 이 작은 지면이 세월호 참사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 영화의 현장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기록해온 순간들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곧 관객과 만날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들도 살폈다. 송경동 시인과 밴드 ‘9와 숫자들’의 뮤지션 송재경이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시간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글로 옮겼다. 세월호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기록들의 집합에서부터 다시 물어본다.

영화인들은 세월호 이후, 어떻게 기록해왔나

2014년 8월9일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사권은 유족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돼야 한다!” 영화인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준비모임을 만들어 24시간 릴레이 단식에 들어갔다. 영화인준비모임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의 당위성, 안전한 나라를 향한 염원 등을 주제로 영상 제작도 시작했다.

2014년 10월6일

세월호 관련 첫 번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됐다. 당시 영화제 조직위원장이던 서병수 부산시장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을 담은 영화라서 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다이빙벨>을 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영화계는 즉각 비판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는 영화인 1123인 선언’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치적 외압에 휘말렸고 올 2월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해촉에 이어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

2014년 10월31일

‘시민이 함께하는 세월호 추모 영상제’가 열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모임’이 주최하고 ‘세월호 추모 영상제 기획단’ 주관으로,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추모 영상 10편이 공개됐다. 이날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모임은 8월9일부터 84일간 이어온 영화인 릴레이 동조 단식을 끝맺었다.

2015년 12월3일

세월호 관련 두 번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2015)가 개봉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작품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2016년 3월30일

인디다큐페스티발2016에서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이 상영됐다. 4•16 연대미디어위원회가 기획, 제작하고 박종필, 김재영, 정일건, 태준식, 박정미, 손경화, 최종호 감독이 참여한 7편의 단편이다.

2016년 4월14일

세월호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이 개봉한다.

책과 음악으로 다시 생각하기

<세월호, 그날의 기록>

1970~80년대 간첩으로 몰려 고문 피해자가 된 이들의 진실 규명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세월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은 2015년 봄부터 10개월 동안 15만장에 가까운 기록들과 3테라바이트가 넘는 자료를 살폈다.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주한 선원들간의 대화, 해경 경비정에 올라탄 선원들이 해경과 나눈 대화, 사고 소식을 들은 뒤 청해진해운이 감추려 한 장면들 등이 속속 밝혀졌다. 세월호 침몰 과정, 구조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점, 배의 개조 및 운항관리규정 등의 문제점들도 드러난다. 자료와 기록을 통해 진실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방식이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기록이다. 진은영 시인과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세월호를 비롯한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밀양 송전탑 투쟁, 제주 강정마을 사태들을 통해 사회적 치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김애란, 김연수, 박민규, 황정은 등 12명의 작가들이 쓴 <눈먼 자들의 국가>,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한다.

루시드 폴 7집 《누군가를 위한,》 /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6집 《겨울, 그리고 봄》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주렴.’ 타이틀 곡 <아직,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은/ 4월이 오면/ 유채꽃으로 피어/ 춤을 춘다지’로 이어지는 <4월의 춤>. 루시드 폴이 떠나간 영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만들었다.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으로 작업했다”는 말로는 <잊지 말아요> <제자리로>로 추모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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