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실을 예정입니다. 이번주 역시 지난주에 이어 필자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새로운 글을 싣습니다. 그만큼 영화제를 둘러싼 일들이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과연 몇 번째 기고문에 이를 때쯤 우리가 원하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월, 나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시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 대한 탄압과 정치적 압박을 비판한 바 있다. 두달이 지났고, 간혹 긍정적이거나 환영할 만한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악화되고 있는 현 상황의 책임은 오롯이 부산시장과 그의 측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정부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치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미 2400년 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범답안을 제시한 바 있다. 서병수 시장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철학에 대한 강의를 받은 적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서병수 시장은 깊이나 세심함이 없는 정치인이다. 그는 토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를 믿지 않으며,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책과 의견을 밀어붙이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비유하자면, 그는 자살폭탄테러범과도 같다. 과거 전쟁의 시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돌진하던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자신만의 의미 없는 정치적 죽음을 위해 달려갈 뿐이다. 작금의 시기에서 비유를 찾자면, 합당하거나 명백한 이유 없이 그저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게 목표인 이슬람 지하드 자살폭탄테러범이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지난 두달을 돌아보면, 부산영화제에 대한 서병수 시장의 대응은 오로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적인 증오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그의 증오는 2014년 영화 한편의 철회요청에 대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거부로 촉발되었다. 그런 점에서, 부산영화제와 이용관에 대한 그의 탄압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놀이터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짜증이나 떼쓰기에 가까우며,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우둔함이거나 나쁘게 말하면 정신착란에 가깝다. 서병수 시장은 한국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부산시 공무원들, 그리고 부산시민들에게도 골칫거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서병수 시장이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검찰조사와 이후 법리적인 다툼의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진 않지만(스폰서 중개와 관련된 수수료와 관련 있다고 알고 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안팎의 사람들로부터 협찬이나 스폰서 유치의 과정에서 다른 문화예술기관들과 같은 관행과 과정을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의 경우, 공통적인 관행은 이러한 종류의 재정적/회계적 부적절함을 변호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로 작동한다. 특히 같은 방식으로 다른 기관들이 고발된 적이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한국의 법률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과정과 관행으로 사업하는 다른 기관들은 내버려두고 유독 부산영화제만 지목해 혐의를 씌우는 과정이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 2016년에는 슬프게도 부산영화제가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병수 시장은 부산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인사말을 통해 부산시와 부산시민의 번영을 위해 다양한 목표를 제시하며 매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문화도시 부산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부산영화제를 망가뜨리면서 문화도시 부산에 대한 그의 약속을 어떻게 충족시킬 건지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분명한 건 부산영화제를 망가뜨리는 것은 한국영화계와 세계 영화공동체의 손실이자 부산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서병수 시장이 자신의 미련한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서병수 시장의 정치적 생명에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며 그의 명예는 추락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좀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장의 등장을 기약하며, 지금의 영화제는 문을 닫을 것이다. 부산 지역의 호텔과 술집 그리고 상점들의 수입은 감소할 것이며, 한국민들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주요한 행사를 잃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승자는 없다.
서병수 시장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지나친가? 하지만 이 글을 쓰게 만든 건 서병수 시장이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부산시의 탄압을 비난하는 국내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어떤 합리적인 변명도 없이 그저 자신의 아둔한 행동을 변명하기만 하는 그의 오만함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자 모욕이다. 평생을 정치라는 기름투성이 막대를 힘겹게 올라왔을 서병수 시장에겐 이제 미끄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