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아? 내가 좋아?” 이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의 주인공은 바로 임권택 감독님의 부인 채령 여사님이었다. 지난 3월22일 CGV아트하우스 임권택, 안성기관 개관식에서 사회자 박중훈의 지명으로, 예정에도 없던 답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불려나오신 여사님은 오래전 영화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했다. 그날 영화에 의문의 1패를 당하신 것이 억울했지만, 지나온 시간들에 충분히 보상을 받은 느낌이라 하셨다(그리고 “임감독님이 예전에 김영화씨를 만났나요?”라는 박중훈의 애드립이 작렬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다음주 1051호 특대 2호에서 표지와 기획 기사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주 특대 1호 커버는 <더 킹>으로 처음 만난 정우성과 조인성이다. 정말 그들의 비주얼을 한참 넋나간 채로 바라보기만 했다. 한국영화의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창간 21주년 기념 특대 1, 2호를 빛내준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씨네21> 또한 그렇게 보상받는 느낌이다.
그렇다, 드디어 창간 21주년이다. 지난해 20주년 특대호와 송강호 별책부록, 그리고 여러 행사들을 끝내고 한동안 큰일을 벌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21주년이 되고 보니 그 ‘21’이라는 숫자 때문에 뭔가 더한 것을 벌여야 한다는 무언의 눈초리가 미디어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주 21주년 기념 1050호와 다음주 1051호까지 특대호를 준비했다. 일단 특집으로는 지난 21년의 한국영화들을 재빠르게 훑어보며 지금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가령 <지구를 지켜라!>가 1위로 뽑힌 2003년의 경우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가 각각 2위와 5위였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 베스트5에 끼지도 못했다. 요즘처럼 연말 결산을 하며 한국영화 베스트 다섯편 꼽기가 힘들다고들 하는데, 다시 그때와 같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고 싶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역시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변화에 따라가려 애썼고 그러면서 여전히 붙들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고심했다. 언제나 1순위는 오랜 정기구독자들과 더불어 여전히 손맛을 느끼며 종이잡지를 구매해주는 분들이다. 디지털로 기사가 업데이트되는 홀드백의 경계가 갈수록 무너지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든 ‘퀄리티’는 바로 그 종이잡지에 맞춰져 있다. 그런 다음 디지털로 소통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더 있다. 어쨌거나 지면과 디지털의 경계를 넘어 <씨네21>이 그 자체로 한국영화와 소통하는 가장 거대한 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씨네21>은 지난 21년을 버텨오며 한국영화를 기록해온 대표 매체라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있다. 속보성 가십 기사들의 홍수 속에서 계속 ‘진짜’를 보여주고 싶고, 다른 매체들이 관심 가지지 않을 영역으로 계속 들이대려 하며, 손가락질 한번으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는 모바일 시대에 여전히 20~30매의 영화글도 읽을 수 있는, 물론 그러면서도 재미와 의미를 양손에 꼭 쥐고 감히 한번에 서너 마리의 토끼를 잡는 매체로 남고 싶다. 21주년을 맞아 괜히 거창하고 비장한 것 같기도 하지만, 1년에 1번이라도 이런 생각에 젖어야 다시 1년을 버티는 힘을 얻는다. 계속 지켜보고 응원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