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실을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필자는 앞서 지난 2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장문의 글(1041호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가’)을 보내왔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입니다. 과연 몇 번째 기고문에 이를 때쯤 우리가 원하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1995년 처음 부산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 최초로 국제영화제를 설립하기 위해 분주히 애쓰던 김동호 현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영화제 설립 멤버들의 초청으로 부산을 찾은 것이다. 나의 역할은 부산시장과 부산시 의원들을 만나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 업계에 몸담고 있는 해외 전문가 입장에서) 영화제가 무엇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설립을 위해 부산시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장직을 맡고 있던 문정수 시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대답했다. 이후 부산시의회는 결국 영화제 지원을 결정했고,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했다.
이후 나는 해마다 부산을 찾고 있다. 때론 일년에 한 차례 이상 부산을 방문하면서 영화제는 물론 부산시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돌아보면 지난 20년 동안 부산시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대한민국 역시 군사정부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완전히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난 성장 과정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주요한 성장동력이 되어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해운대에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지하철 노선 확대, 수영만과 해운대를 잇는 광안대교 건설 등 부산시 교통 인프라 확충에 주요한 역할을 했고, 수많은 해외 방문객을 유치하며 우중충하고 지역색 강한 항만도시에서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국제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했다. 이름도 낯선 ‘부산’이라는 도시는 20년 전만 해도 전세계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수백만명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부산’이란 도시를 알고 있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중앙정부와 부산시(의회)가 영화제에 지원한 액수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가치를 부산시에 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금의 사태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한국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고 비용 대비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부산국제영화제를 중앙정부와 부산시가 작정하고 망가뜨리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나랏일을 하겠다고 뽑힌 사람들이 할 일인가? 선출직 공무원들과 고위관료들의 책략과 행태에 유권자들은 그냥 방관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게 나에겐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다.
부산시가 이용관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이 기회를 틈타, 시의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등장할 거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반면, 전문 지식을 가진 프로그래머들을 포함한 많은 영화제 직원들은 이용관 퇴와 함께 영화제를 떠날 것이다. 의욕 넘치는 신임 집행위원장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과 새로운 팀을 꾸려 일하려 할 테니 말이다.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아껴온 전세계의 동료들은 영화제를 보이콧할 것이다. 부산시가 저지른 정치적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항의 시위를 조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작품 출품을 거부할 것이며, 기자와 평론가들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을 더이상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종국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걸었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바로 ‘제 살 깎아먹기’의 전형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한국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이 원하는 일인가? 자신들이 고집하는 방법으로 과연 국내외 영화계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들은 과연 민주주의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토니 레인즈 특별 기고문 → [포커스]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