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부산 얘기냐, 하고 물을 독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더 할 말이 남았기도 하고, 해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데일리로 참여했던 <씨네21>로서도 중요한 문제다. 어찌 보면 대의와 당위, 그 이상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산시장이 그처럼 오래도록 영화제와 함께한 우리를 ‘자문위원 무자격자’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심정으로 이번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캠페인을 시작하려 한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를 시작으로 매주 한명씩 부산을 추억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글을 보내줄 예정이다. 일종의 ‘역 카운트다운’의 느낌으로 기고마다 번호를 달 것인데, 과연 몇 번째쯤에 이르러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번 사태에 비분강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부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1996년 1회 영화제가 열리기 직전까지는 자원봉사자로 일했기에, 그 초창기의 순수한 열정도 알고 있다. 표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에 가끔 초면인 사람에게 고향이 부산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깜놀’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산에서 산 해가 서울에서 산 해보다 길다. 아마도 부산에서 대학까지 졸업해서 그럴 것인데,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이슈로 화제가 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중학교 선배이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최초 사퇴 권고한 것으로 알려진 김광회 당시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이 대학교 선배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어쨌거나 시장님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자문위원이자 <씨네21>의 대표 격인 내가, 다른 67인의 자문위원들과 함께 부산지방법원으로 하여금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가처분신청’으로 인한 심문기일통지서를 받게 하셨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주에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아무튼 당장 며칠 안으로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가지고 309호 법정으로 출석하라고 했다. 주차 시설이 협소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거기에 우리 68인의 자문위원들은 채무자로 등록돼 있었다. 더 기분이 나쁜 건 개인정보라고 할 만한 인적사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졸지에 하정우, 유지태, 방은진, 최동훈 감독 등의 주소와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어서 원래 이런 일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심히 불쾌했다.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격 있음을 증명하라는, 그 ‘타진요’스러운 발상에 씁쓸했다. 사실의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훼방’이 목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뻔히 알면서 너희들 엿이나 먹으라는 부산시의 심보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다 지난주에 공개된, 5월에 열리는 칸국제영화제의 멋진 포스터를 보면서 더 씁쓸했다. 지금이면 부산국제영화제도 공식 포스터는 물론 초청 게스트 문제로 한창 바쁘기 시작할 때다. 이미 올해의 회고전과 특별전을 꾸릴 프로그램도 대략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더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비단 이것은 ‘예술’ 혹은 ‘축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죽 답답하면 해운대에서 횟집을 하는 친구, 해운대 모 호텔의 조리사로 있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그냥 ‘다른’ 사람 얘기도 궁금했다. 매년 영화를 본 적도 없고 바쁘기만 했던 친구들, 그저 영화제 기간을 ‘대목’ 혹은 ‘매상’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친구들의 얘기도 한결같았다. “해마다 잘되는데 와그라노, 그냥 계속 옛날처럼 하면 안 되는 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