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똑같은 책을 써온 것 같다.” 프랑스의 대문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들은 스스로의 술회처럼 닮은 구석이 많다. 대부분 일인칭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주인공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톤이 어두컴컴하다. 또한 주인공은 말수가 적고 자기에 대해 특별한 희망이 없으며, 타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법이 없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별다를 바 없어, 그들의 관계는 늘 피상적이다. 모디아노의 근작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에 등장하는 다라간 역시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전달하는 건조한 문체를 밟아나가다보면 제목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는 차라리 반어처럼 느껴진다. 나이든 작가 다라간이 수첩을 찾아준 이에게서 자기 과거를 더듬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희미하게 새긴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몽환적인 과거”를 다루는 마당에 박진감 같은 게 끼어들 틈은 없다. 그저 다라간이 과거에서 더 오래된 과거로 옮겨가며 어린 자신을 목격하길 거듭하는 와중에도 전반에 깔린 미스터리는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요원한 길로 빠진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는 모디아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자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앞선 요소들은 물론, 2차대전 직후의 서늘한 공기,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방치된 아이는 어린 모디아노가 체험했던 과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둘러싼 안개 같은 난해함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자기의 과거를 똑똑히 목격하려는 다라간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남을 수밖에 없는 건 작가 자신부터가,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는 과정이 어긋난 기억와 망각에 의해 방해를 피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실패라고 할 만한 그 상태가, 한 개인이 제 힘으로 기억할 수 있는 과거의 최대치인 건 아닐까. 모디아노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새로운 소설을 쓰면서 그 외면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음을 끝끝내 확인하고 싶은 건 아닐까. 또다시 익숙한 사내를 주인공으로 삼을 모디아노의 새 소설을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불확실하고 몽환적인 과거
그가 옛 소설에 써먹은 토르스텔이라는 이름 또한 그렇다. 다만 그 소리의 울림 때문에 따온 이름. 토르스텔 하면 생각나는 건 이게 다다. 더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다.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질 오톨리니는 아마 실망할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남자에게 무슨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47쪽)
다라간은 자료를 읽어내려가다, 어제 종이들을 애써 해독하며 받은 것과 똑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겉잠을 자는 동안 들려온 문장들 가운데 몇 마디를 아침이 밝았을 때 떠올리지만,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전하지 못하는 느낌. 그 와중에 명확한 주소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97쪽)
라파리에르 가(街)까지 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아니의 손길을 느꼈다. 그는 아직 언제 튀어나가 차에 치일지 모르는 어린애였다. 계단을 오르기 전, 아니는 조용히 올라가야 한다는 뜻으로 검지를 자기 입술에 갖다댔다.(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