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은 시인이다. 그런데 그의 방대한 저서 목록을 보면 그를 시인으로만 불러도 될지 망설여진다. 원재훈은 1988년 시인으로 문단에 나와 시집, 소설, 동화, 수필, 인물론, 번역, 영화 이야기까지 내놓으며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해왔다. 그렇게 그는 근 30년간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였고, 세상이 아직 모르는 알토란 같은 정보를 전했다. 올해 초에 나온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그가 지금껏 사랑해온 책 28권을 소개하는 에세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고전과 문학을 벗하며 사는 이들이 조용히 마음에 품어온 책이 즐비하게 엮였다.
‘원재훈의 독서고백’이라는 부제는 그가 문인들을 만나 얻은 행복관을 묶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떠올리게 한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칼럼까지 부지런히 소화하는 그에게 더없이 걸맞은 제목이다.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원재훈 에세이 특유의 상냥한 말투와 꼼꼼한 설명이 적절히 섞여 있다. 작가의 내력부터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까지 자세히 설명하고는 작품과 관련한 실마리를 잡아 삶의 지혜를 전한다. 독서를 사랑하는 이, 그저 안식을 찾는 말을 원하는 이 모두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방식이다.
어느 부분에서도 작가가 직접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느린 독서를 설득한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두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스크루지 영감은 사실 같은 사람”이라는 도발을 던지거나,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다루며 서른을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나이”라고 말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책 속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얼른 그 원전을 펼쳐 대답을 찾아내고 싶어지는 까닭이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한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원재훈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대한 소개로 책을 닫으면서 ‘이야기’의 가능성을, 그를 전해받을 수 있는 독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강조한다. 그리고 아직 못다 한 이야기에 입이 간질간질하다며 이야기꾼으로서 자기 역할을 되새긴다.
그가 권하는 느린 독서
어쩌면, 진정한 복수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하고자 하는 자의 분노한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어떤 복수도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분명히 깃들어 있을 햄릿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원수에게 겨눈 칼날은 과연 그의 심장을 관통했는가? 그것은 오히려 당신의 심장을 관통한 것은 아닌가. 그걸 모르지 않았을 당신의 결정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죽은 햄릿은 말이 없습니다.(83쪽)
사실, 강물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호명을 하는 의미가 있을 뿐, 강은 강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갠지스 강과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임진강이 서로 같은 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강은 주위의 풍광에 의해 구분되기도 하지만 강 자체만 보면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달과 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 영원성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켜줍니다.(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