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가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의 실물을 마주했을 때 묘하게 권위적이란 인상을 받았다. 1, 2권 합쳐 12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는 물론, “47년 맨부커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의 천재적 작품!”이라는 문구로 채워진 널찍한 띠지 또한 어딘가 고전의 풍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외관에 대한 느낌은 시작에 불과하다.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드러나는 28살 작가의 야심은 묵직한 장정을 비집고 나올 만큼 거대하다. 외곽으로 몰린 사내 무디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금광을 찾아온다.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그곳을 찾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어떤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엘리너 캐턴은 소설을 이루는 12명의 인물 누구 하나 헛되이 다루지 않으면서도 서사의 밀도를 단단하게 붙든다. 그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나가면서 별자리의 체계를 경유한다. 열두 남자는 각각 황도 12궁을 대표해 그에 맞는 성격과 특징을 부여받아, 해당 별자리가 등장하는 때에 맞춰 등장하거나 퇴장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상징을 체계적으로 연결해내는 작가의 솜씨를 자랑하는 한편, 오랜 생명력을 지닌 점성술의 논리를 빌려 안전하고 효과적인 전개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성과가 된다. <루미너리스>는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이다. 한번 눈이 열리기 시작하면 숨가쁘게 독자를 빨아들이지만, 개안으로 가는 여정이 경우에 따라 느릴 수 있다. 초장부터 서사를 장악하는 별자리의 역학을 두고 낯설다는 인식에 계속 머물러 있는 독자라면 그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은유의 연속으로 기억하기 십상이다. 작가의 힘찬 보폭을 잰걸음으로 쫓아가는 것보다 순간마다 스치는 요소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점점 속도를 높이는 독서가 더 걸맞은 책이다.
별자리의 의미가 운명의 존재에서부터 작동하는 것처럼, 무디를 비롯한 사람들이 꾀한 일확천금의 꿈은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절대적인 진리에 수렴해나간다. 그럼에도 <루미너리스>가 해와 달처럼 빛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생존의 의지를 쥐고 운명을 거스르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고, 찌그러질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 탐욕이 그 원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해와 달처럼 빛나는 소설
프로스트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잘 못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본성을 자신과 비교해서 부러워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것 말고, 관찰하고 숙고하는 법 같은 건 전혀 몰랐다. 그는 자기 자신의 감각이라는 고치에 영원히 둘러싸여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이나 아직 갖지 못한 것들만 계속 마음에 두는 은밀한 쾌락주의자나 다름없었다. 그의 자기 본위적 태도는 광범위하고 완벽했다. 그는 절대로 앞으로 나서지 않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은밀한 동기에 대해 절대로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공평하고 한결 같은 사고를 지닌 굉장히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평가되곤 했다.(1권 281쪽)
물병자리에서 힐끗 본 것이― 기대하고, 믿고, 예언에 나오고, 예측되고, 의심하고, 미리 경고 받았던 것들― 물고기자리에서는 명백해진다. 한달 전에는 오로지 몽상가만이 꿈꾸던 그런 환영이 이제는 현실의 형태를 갖고 실체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의 산물이고, 자신의 손으로 결말을 선택한다.(2권 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