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막힌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일정 이상의 흥미를 선사한다. 극단을 종용하는 선택지를 쥐고 있는 이들은 끔찍한 패배의 주인공이 되거나 숭고한 결정을 내리는 용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3월 북엔즈는 숭고함과 끔찍함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책들을 모았다.
드라마 <웨이워드 파인즈>는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중 하나다. 독재사회와 디스토피아를 중심으로 무수한 장르들의 조합이 구현된 지옥도는 작가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무시무시한 필력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외딴 마을에 떨어져 자신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미친 과학자의 어둠에 기꺼이 반기를 드는 한 남자의 무용담은 말초적인 재미와 함께 다음 세상에 대한 참혹한 비전을 동시에 보여준다.
엘리너 캐턴은 <루미너리스>에서 곤궁함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탐욕으로 뒤덮인 금광에 뛰어든 사내 ‘무디’를 그린다. 그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몸집을 불리며 비슷한 처지의 열두 사내를 서사 한복판으로 끌고 온다. 운명이 이미 눈앞에 있음을 알면서도 생존의 의지를 놓지 않는 그들의 활약상이 흥미진진하다. 별자리의 체계를 이용해 그들의 각기 다른 특징에 별격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비범한 능력에 맨부커상은 28살의 엘리너 캐턴에게 최연소 수상자라는 영광을 수여하며 큰 갈채를 보냈다.
푸근한 문장으로 전방위의 글을 써내는 시인 원재훈은 지난날의 독서를 ‘고백’한다. 그가 보여준 다방면의 관심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엿볼 수 있는 독서 편력기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는 독자들을 독서의 즐거움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설득은 다름 아닌 “저도 그 순간에 그렇게 힘을 얻었습니다”라는 따뜻한 위로로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건넨다. 동지의 손을 꼭 붙들 수밖에.
어른이 되자마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세상을 ‘인간답게’ 버티는 법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운영한 김중미는 픽션이라기에 너무 생생한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한국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6년이 더 흘렀지만 김중미는 여전히 그 아이들 곁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작가가 30년 세월 동안 마주한 숭고한 순간들을 담은 <꽃은 많을수록 좋다>는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은 일화로 가득하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늘 비슷한 모습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특유의 건조한 이야기를 썼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해 발표한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에도 언젠가 그의 소설에서 만난 듯한 남자가 등장한다. 소설을 펼친 우리는 묵묵한 중년 남자의 과거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혼자 어루만진 시간이었다는 걸 목격하고, 그 이야기가 모디아노의 자화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어쩌면 그의 다음 소설을 읽을 때도 익숙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