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기도 했던 소설가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라 말했다. 그의 단편 중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가 상상한 도서관은 육각형 모양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열실로 구성되고, 그곳에 비치된 책들은 모두 410쪽의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책의 글자들은 쉼표, 마침표, 여백을 포함한 알파벳으로 조합되어 있는데, 이 책들은 가능한 모든 알파벳의 조합을 망라하고 있다. 결국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책은 물론이고 장차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책이 이 도서관에 있게 된다.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의 수는 아마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의 모든 원자의 수효보다 많으리라. 이러한 보르헤스의 발상을 확장해보면, 세상의 모든 음악, 세상의 모든 미술, 세상의 모든 영화를 소장한 아카이브를 상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엄청난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작품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이러한 가상의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에는 못 미치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키보드만 두드리면 거의 모든 지식과 문화에 접근할 수 있다. 영어를 해독할 수 있고 한자와 제2외국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네이버와 구글의 사전과 번역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디지털로 변환될 수 있는 인류의 모든 유산과 연결된다. 잘 알다시피 이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얼마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느냐’일 뿐이다. 대학 시절까지 수동 타자기를 썼던 나는 모니터 앞에서 간혹 황홀경에 빠질 때가 있다.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모든 것이 존재하는 거대한 바다로 이어지는 통로가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케 한다. 한 개인이 이전에 살았던 어느 학자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방대한 지식에 즉시 접근하고, 어떤 제왕도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된 이 시대는 진화의 다른 단계라고 할 만하다. 반려동물로 태어나 인간을 집사로 두는 것만은 못할지 모르겠지만, 21세기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은 로또의 로또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빅뱅이라고 할 정도로 지식과 즐거움의 가능성이 팽창했음에도 막상 우리의 삶은 여전히 견디기 어려운 무엇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심지어 삶과 세상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점점 뚜렷해지는 민주주의의 실패가 그러한 발전을 삼켜버릴 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주제넘기 때문일까. 또는 어차피 행복이란 그런 경로로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일까.
세계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오히려 자기환멸에 빠진 파우스트 박사는 메피스토펠레스와 수상한 거래를 시작하고, 시인 말라르메는 “아! 온갖 책 다 읽었건만 육체는 슬프다”라고 탄식한다(원문에 충실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번역을 좋아한다). 우리는 파우스트도 말라르메도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덕택에 우리는 최고 수준의 학문과 예술을 이루려는 뼈를 깎는 연마 없이도 무한한 바다에 접속해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우스트처럼 환멸을 느끼고 말라르메처럼 탄식해야 할까. 아니면 그 무한한 천국의 바다에서 그냥 익사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