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가 물었다. 처음 영화기자 일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냐고. 나는 주저 않고 답했다. ‘검색’이라고.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기사 쓸 때 누구나 인터넷을 검색해서 참고하는 것 아니냐고. 왠지 내가 정말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인데, 2000년경 영화잡지 <키노>에서 영화기자 일을 막 시작하던 때에는 인터넷 환경이 원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씨름해야 했다. 사내의 일부 컴퓨터에서만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검색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메모를 해뒀다가, 그 컴퓨터를 사용할 시간을 기다려 잽싸게 검색을 하고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사내 기사 인트라넷 같은 시스템도 없어서, 원고를 작성하면 정성스레 프린트를 하여 정성일 편집장님의 책상에 올려두고 빨간펜을 기다렸다. 이세돌 바둑기사가 알파고에게 충격의 2연패를 당한 지금,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몇해 전 <씨네21>의 기자와 평론가들이 한 포털에서 기획한 ‘세계영화작품사전’에 참여해 수백편의 영화평을 쓴 적 있다. 사회적 배경과 영화사적 의미는 물론 명장면과 명대사까지 그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해서 썼다. 그 영화에 대해 다른 자료는 검색하지 않아도 될 만큼(아마도 기획의도가 그러했던 듯) 길게 썼다. 그래서인지 많은 댓글들이 이러했다. ‘이걸로 오늘 리포트는 끝~.’ 이런 괜한 얘기까지 꺼낸 이유는, 과거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건질 수 있는 정보의 퀄리티라는 것도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한편의 영화 리뷰를 완성하기 위해, 혹은 사소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얼굴도 모르는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지는 일이 흔했다. 쉽게 말해 <노예 12년>에 대해 쓰려면 노예무역, 노예해방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사거나 빌려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은 일단 홍보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가 거의 책 수준이고, 인터넷에서는 특정 영화가 다루는 역사나 인물에 대한 자료를 부족함 없이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지어냈다면 이제는 찾아놓은 자료를 편집하는 수준일 때가 많다. 그래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에디터’라 불러야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번호 특집은 주목받는 할리우드 시나리오작가 5인에 대한 소개다. 가장 먼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로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 조시 싱어에게 눈길이 간다. 송경원 기자가 쓴 것처럼, 조시 싱어는 ‘캐릭터의 심정을 함부로 상상하지 않고 주변 정황을 최대한 꼼꼼히 조사하고 묘사하는 탐사, 자료조사의 스페셜리스트’다. 역시 이번호 ‘씨네인터뷰’로 만난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도 비슷한 경우다. 물론 앞서 쭉 얘기한 기자나 비평가의 글과 스토리텔링을 갖춘 작가의 글은 성질이 다르지만, 그 근본은 ‘취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 또한 후배 기자들에게 제발 ‘그냥’ 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으면 관련 자료라도 왕창 찾아서 읽어라, 우리 때는 인터넷도 없었어, 라며 아재 인증을 빼놓지 않는다. 기자의 시각도 취재한 만큼 정교해지고 작가의 이야기는 취재한 만큼 풍부해진다. 그래서 이런 글이나 저런 글이나 결국 풍부한 팩트가 중요하다. 침대가 과학이듯이 팩트가 곧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