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한창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44시간을 돌파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여당이 무효를 제기한다 하고 선거구획정 문제도 있으니 오래가진 못할 듯싶다. 야당마저 어차피 질 싸움 싸우면서 지겠다는 심정이라는데, 어쨌든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누군가는 릴레이로 이어지는 캐릭터 쇼로 받아들이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신기록 경신을 기대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듯 국회방송을 시청하고 익살스런 댓글이 여기저기 재인용된다. 그렇다고 유쾌하게만 소비되지도 않는다. 냉정하고 분석적인 시선이 공존하고 이 새로운 정치 이벤트에서 테러방지법이라는 쟁점은 흐려지지 않는다.
무제한 발언이라는 단순한 룰. 토론자는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뿐이다. 관련 주제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만의 조건 때문에 형식적 시간 때우기는 불가능하다. 덕분에 텅 빈 국회에서 홀로 인간체력의 한계까지 버티는 모습은 밀도감 있는 모노드라마가 된다.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란 집단난투극으로만 봐왔던 우리다. 화려한 액션 활극에도 고개를 돌렸건만 이 정적인 형태의 몸부림을 지켜보며 오랫동안 허기졌던 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빠르게 판단하는 세상이다. 판단을 하려면 해석이 필요하고 해석을 하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도 해석의 단계도 건너뛰고 판단으로 직행돼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부분적인 정보로 전체를 비판한다. 이력서로, 첫인상으로, 어딘가에 가입한 커뮤니티로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단정해버린다. 언젠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는 오해와 다급한 해명들이 공기처럼 떠다니다 사라진다. 익숙한 일이다. 사회구성원으로 기능하는 존재에게 할당되는 자원은 한계가 있다. 거대한 기계 속의 나사 하나가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을까. ‘넌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른이 되지만 사회에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위협받는 덕목은 자존감이다.
말을 해라. 하고 싶은 말은 다 해라. 당신이 하는 말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들을 것이다. 이 간단한 룰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발언자가 부여된 무제한의 시간을 기만하지 않고 유의미한 말들로 채워낼 때 상호 존중이 완성된다. 그런 순간은 지켜볼 가치가 있다. 시스템보다 인간을 우선시하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당연하게도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6일 밤낮으로 진행된 이 무제한 토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다. 보장되어야 할 인간의 권리. 내용과 형식에서 일관된 주제 플레이를 하고 있는, 쉽게 접하기 힘든 고차원적 모노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