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見知り’라는 일본어 표현이 있다. ‘히토미시리’라고 읽는데, 그 뜻은 ‘낯가림’이다. 일본에는 ‘낯가림이 심하다’라는 컨셉으로 쇼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책도 쓴 개그맨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오도리 와카바야시다. 와카바야시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 <아메토크>에서 ‘낯가림이 심한 개그맨’ 특집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그 자신이 낯가림이 너무 심한데도 개그맨이라는 직업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데서 생기는 우여곡절이 이보다 더 웃길 수 없었다(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엇이든 글씨를 읽는다- 예컨대 음료수 캔에 쓰인 성분표시- 는 말은, 역시 낯가림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공감의 폭소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개그맨의 활동 범위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마타요시 나오키는 소설 <불꽃>을 써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해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고(요즘 일본 서점에서는 마타요시가 추천한 소설들에 특별 코멘트가 붙어 광고된다), 영화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 역시 원래 개그맨이었다. <불량공주 모모코> <우부메의 여름>에 출연한 미야사코 히로유키 역시 개그맨으로, <아메토크>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를 쓴 와카바야시 마사야스는 가스가 도시아키와 함께 개그콤비 오도리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오도리는 2008년 ‘M-1 그랑프리’(일본 만담 콘테스트로 1위 상금은 1억엔, 2010년까지 열렸다)에서 2위에 입상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2009년과 2010년에 방송출연 횟수 1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와카바야시는 단독으로도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맡곤 하는, 능력을 인정받는 젊은 개그맨 축에 속한다.
그런 와카바야시가 책을 다루는 잡지 <다빈치>에 연재한 글을 묶어 낸 책이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다. 와카바야시라는 캐릭터를 모르면 쉽게 즐기기 어려우려나 싶기는 하지만, 특유의 개그 감각이 살아 있는 글을 읽는 재미만은 틀림없다. 와카바야시는 미식에도 타인의 삶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방송 일을 시작하고 나니 그런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에도 나가 말을 해야 했다. ‘맛없다’ 대신 ‘독특한 맛’으로, ‘조잡하다’ 대신 ‘취향이 독특하다’로, ‘누가 그런 걸 하냐’ 대신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려울지도 모릅니다’로 고쳐 말하는 법을 익혔다.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는 제목과 달리 낯가림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극히 적다. 대체로 무명 개그맨이 스타가 되면서 경험한 이쪽과 저쪽의 생활에 대한 소회다. 인기를 얻은 뒤라고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인정하지 못했던 삶의 방식과 타협하는 법을, 혹은 타협하지 않는 법을 배워간다. 누군가는 이것을 두고 어른이 되는 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융통성 없고 낯가림 심한 사람의 사회화 과정으로 보인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위안이 없다. 여기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