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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신경쓸 게 없네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6-02-19

<씨네21> 기자 K는 어떻게 넷플릭스에 중독되었나

영화기자 K의 플레이스테이션4는 한동안 장식품이었다. 같은 회사 디지털 미디어팀의 독거노인 S기자와 주말마다 온라인에서 만나 축구 게임을 하는 것 말고는 도통 켤 일이 없었다. 찬밥 신세였던 이 사각형 기계가 최근 주인 K의 손때를 타기 시작했다. K가 플레이스테이션4를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세계와 연결하기 위한 셋톱박스로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K의 콘텐츠 감상 습관을 완전히 바꾸어놨을까.

“또 택배? 집이 작아서 둘 데도 없는데 제발 사모으지 마라. 사람은 자고로 버리면서 살아야 한다.” K의 아내는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이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듯 질색했다. 돈이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한번 보고 말 타이틀에 3만원 가까이 쓰는 남편 K를 이해할 수 없었다. K 역시 아내의 불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기사를 쓸 때 참고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사모으기엔 주머니가 턱없이 얇았다. 수납 공간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단돈 만원이면 IPTV를 통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안방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언제 어디서나’라는 편리함

K는 결혼하면서부터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 구입을 줄이는 대신 IPTV와 가까워지기로 했다. 그런데 IPTV를 통한 영화 감상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더 좋은 일을 시켜주는 구조였다. 일단 IPTV는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플랫폼 사업자에 전화를 걸어 가입 신청을 한 뒤 셋톱박스를 설치하기까지 하루 이상이 걸린다. 해지하기도 쉽지 않다. 약정 기간 안에 해지하려면 만만치 않은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약정 기간이 지나도 전화 상담원과 말씨름을 해야 한다. 주머닛돈도 이중, 삼중으로 나간다. 편당 요금을 책정하는 까닭에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 시즌 하나를 통째로 보려면 적지 않은 비용을 내야 한다. 편당 요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월정액이 있지만, 매달 IPTV 이용료와 미드 월정액 모두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일정 기간 안에 감상해야 한다. 물론 완전소장용 요금을 내면 기간과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돈 내고 보는 건데 IPTV 플랫폼 사업자가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고 유치한 광고도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 또 체모라도 등장하면 블러 처리된 화면을 마주해야 한다. 주절주절 써놓고보니 소비자가 확실히 봉이다. 어쩌랴,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보려면 IPTV라도 보는 수밖에. K와 K의 아내는 주로 반값 할인이나 공짜로 풀리는 영화 위주로 골랐고, 신작이라도 볼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해야 했다.

지난 1월7일 목요일 오전, K는 마감을 하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론칭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넷플릭스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미안해, 넷플릭스는 아직 너네 나라에서 이용할 수 없어”라는 새침한 메시지 대신 “언제 어디서나 영화와 TV프로그램을 마음껏 즐기세요”라는 환영 인사가 K를 반겨주었다. K는 ‘한달 무료 이용 시작하기’라는 빨간색 창에 혹해 그 자리에서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창은 멤버십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요금제는 베이식, 스탠더드, 프리미엄, 총 세 가지였다. 모두 노트북, TV,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시청할 수 있고, 영화와 TV프로그램을 무제한 볼 수 있으며, 언제든 해지가 가능한 데다 첫달은 무료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매달 7.99달러인 베이식은 HD 화질, 4K UHD 화질이 제공되지 않고, 한명만이 접속할 수 있다. 60인치가 넘는 스마트TV엔 적합하지 않는 것 같아 패스. 매달 11.99달러인 프리미엄은 HD 화질, 4K UHD 화질 모두 제공되고,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숫자가 4명이었다. 가족이 K와 K의 아내 둘뿐이라 굳이… 역시 패스. HD 화질만 제공되고, 2명이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스탠더드 요금제를 매달 9.99달러를 내고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첫달은 공짜. 요금제를 선택한 뒤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등록하고, 결제 정보를 입력하니 가입 절차가 끝났다. 애걔, 벌써? 놀랍게도 이게 전부다. K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도 넷플릭스에 가입했다는 인증숏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난리가 났다. K는 그렇게 넷플릭스 세계에 발을 들였고,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홀라당 넘어가기까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말이야, 세그먼테이션 전략이 확실하고 뛰어나.” 절친 Y감독이 술자리에서 말했다.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 자리에 함께 있었던 대기업 홍보팀 출신인 K의 아내가 설명해주었다. “시장을 세분화하는 마케팅 전략이야. 쉽게 말해서 고객의 취향을 아주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분류해 그것에 맞는 제품을 권하는 거지. 넷플릭스,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활용하던 전략인데 최근 한국 기업들도 이 전략으로 마케팅하기 시작했어.” ‘심심풀이’(Goof around) 장르 추천목록과 ‘K님을 위한 추천 동영상’의 영화들은 K에게 확실히 중독성이 강했다. 이 목록에 있는 영화들을 초반 5분씩만 엿보아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중 재미있는 작품들을 쭉 봤고, 그 작품이 끝나면 제공되는 추천작 서너편을 연달아 따라갔다. 광고는 물론 블러 처리된 화면이 없는 데다가 불법 다운로드 파일과 한글자막을 찾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켤 필요가 없으며,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자동재생되는 까닭에 다음 에피소드를 찾으려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작품에 몰입하는 데 이만한 환경이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드라마 <나르코스>를 보고 다큐멘터리 <파블로 에스코바의 시간>을 거친 뒤 <코카인 카우보이 리로드디드>까지 보고 나니 마약이라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K는 집에서 주로 TV로 넷플릭스를 한다. 앞에서 소개한, K의 총애를 다시 받게 된 플레이스테이션4 덕분이다. 플레이스테이션4에서 넷플릭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이 애플리케이션이 넷플릭스와 TV를 연결해주는 셋톱박스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4 없이 TV로 넷플릭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금한 나머지 검색해보니 LG 스마트TV도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빙고! 혼수로 마련한, 4년차 스마트TV로 넷플릭스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해봤다. 찾을 수 없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알아보니 최신형 버전을 시작으로 차례로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집 TV는 3월이 지나야 가능하단다. TV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애플TV나 크롬캐스트를 통해 TV로 넷플릭스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굳이 TV가 아니더라도 컴퓨터, 패드, 모바일로도 언제, 어디서나 넷플릭스를 할 수 있다. 거실에서 K의 아내가 배두나가 출연하는 미드 <센스8> 3화를 보고 있었는데, 앞의 줄거리를 몰라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었던 K는 안방에 들어가 아이패드로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보았다. 하나의 계정으로 2명이 동시에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26일 SK브로드밴드가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옥수수(oksusu)를 매월 3천원으로 서비스하기로 한 것도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모바일이나 패드로도 넷플릭스를 할 수 있는 덕분에 시사가 끝난 뒤 미팅 전까지 이번 특집 기사에 써야 할 <셰프의 테이블>을 커피숍에 앉아 마저 감상할 수 있었다.

투자와 제작까지 아우른다는 강점

넷플릭스를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K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있는 IPTV를 언제까지 이용해야 할까. 공중파 TV프로그램은 안 봐도 되지만, 주말 밤을 함께 보내는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등 축구 중계방송은 당장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IPTV는 축구 중계방송을 틀어주는 채널을 포함한 최소한의 채널로 구성된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고, 영화나 미드는 넷플릭스에서 보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K는 넷플릭스와 IPTV가 전혀 다른 성격의 플랫폼이기에 서로의 장단점을 이런 식으로 보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몇 주변 사람들은 “IPTV에 비해 볼만한 작품이 적다”고 말한다. K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대체 IPTV에 있다는 그 수십만편을 모두 보는 게 가능한 일인가. 어차피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나 드라마만 골라볼 텐데 신작 영화야 극장에서 보면 되고, 그렇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는 취향대로 IPTV나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면 충분하다. 넷플릭스가 라인업을 차차 늘릴 계획이라고 하니 IPTV에 비해 작품 수가 적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어쨌거나 IPTV가 TV 앞에서 같은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에게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면, 넷플릭스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콘텐츠를 자신의 시청 환경, 일과, 페이스대로 전송받아 감상하게 됐다.

그보다 영화기자로서 K가 궁금한 건 따로 있다.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를 틀기만 하는 기존의 IPTV와 달리 넷플릭스는 플랫폼 역할에 그치지 않고 투자와 제작까지 아우른다. 넷플릭스가 한국 론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작에 필요한 제작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조건은 하나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것”이라고 몇몇 한국 감독들에게 한 제안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어느 순간 공장 제품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재 한국영화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시도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K는 하루빨리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첫 한국영화인 <옥자>가 기다려지는 것도 단지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어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