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의 루나가 <번개맨>의 주연으로 스크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몇 가지 의외의 사실들이 있었다. 메인 보컬인 루나가 영화 주연으로 데뷔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영화가 ‘특수촬영물’(이하 특촬물) <번개맨>이라는 것. 루나의 <번개맨> 출연은 확실히 예상치 못한 행보다. 하지만 <번개맨>은 어린이 뮤지컬을 다룬 영화이고, 루나가 <인 더 하이츠> <하이스쿨 뮤지컬> 등 뮤지컬 출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과관계의 나열은 보다 쉬워진다. 남아 있던 의문은 인터뷰 후에 말끔히 해소됐다. 루나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장르물에 대한 호의, 무엇보다 <번개맨>의 ‘한나’와 루나의 천진성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제 루나는 곧 한나인 것처럼 보일 차례다. 루나의 소속그룹 f(x)는 어느덧 데뷔 7년차를 맞았다. 알쏭달쏭한 미지의 신호들로 이루어진 소녀들은 이제 다른 차원의 무엇으로 훌쩍 발돋움해버렸다. 한 차례 부침을 겪고 난 후, 견고하고 우아한 사방체 《4Walls》로 거듭난 그들 중 빛나는 한면을 만났다.
-스크린 데뷔작으로 특촬물 영화를 택했다. 연기는 드라마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이후로 두 번째이지만, 주연을 맡은 건 처음이다.
=EBS의 <모여라 딩동댕>을 조카들이 정말 좋아해 ‘번개맨’을 알고 있었다. 평소 가수로서 10대 후반에서 20~30대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면서 아이들과도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 <번개맨>에 도전하게 됐다.
-어떤 과정을 통해 <번개맨>을 하게 됐나.
=자유연기, 노래, 춤을 한달간 연습해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자, 조근현 감독님이 준비해온 건 보지도 않고 대번에 “이 시나리오를 읽고 네가 하고 싶으면 하자.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하지 마”라고 하시는 거다(<번개맨>의 강진 PD는 “영화의 뮤지컬 감독인 곽용근 안무가가 루나의 노래와 춤 실력은 볼 것도 없이 뛰어나다고 강력히 추천해 감독님이 오디션을 그렇게 진행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수를 잘 몰라서 내가 f(x) 멤버인지도 모르셨다던데, 그만큼 열정을 높이 사신 것 같다. “네 열정 하나면 안 될 게 없다. 네가 날 믿고 내가 널 믿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하시니 나도 책임감을 갖고, 감독님을 믿고 따라갔다.
-특촬물에는 관심이 있는 편이었나.
=어릴 적에 <파워레인저>를 엄청 좋아했다. 어릴 때 누구나 좋아하지 않나. 제일 예쁜 핑크를 좋아했다. (웃음) 최근엔 친한 언니, 오빠들이 <파워레인저 트레인포스> 뮤지컬을 해서 보러 갔는데 와, 진짜 같더라. <번개맨>은 일반적으로 특촬물 마니아들이 즐기는 전투적인 히어로물과는 좀 다르다. <번개맨>은 감성적인 요소가 많고, 동심에 호소하는 이야기다. 기회가 되면 마니아층이 좋아할 법한 특촬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어린이 눈높이의 작품을 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대중은 어린이 대상의 영화라 촌스럽거나 ‘오그라든다’고 볼 수도 있을 거다. 인터넷 댓글들을 거의 다 모니터하는데, 루나의 ‘흑역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댓글들이 많더라. (웃음)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 편견을 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히어로물도 거창하거나 폭력적이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살면서 웃을 일도 많이 없는데, 희망과 웃음을 주는 작품도 필요하지 않겠나. 사실, 촌스럽다는 기준 자체가 어른의 기준이다. 어른의 시선에서 작품을 단정짓지 않으려고 나부터도 생각을 많이 바꿨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생각하다보니 진짜 아이가 된 기분이다. (웃음)
-어린이 관객층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
=우리 가족은 경북 문경에 네 가구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다. 워낙 소도시라 조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다 함께 어울려 노는데, 나도 같이 논다. (웃음) 아이들은 내가 연예인인 줄 모르고 선영 언니(본명 박선영)라고 부른다.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은 챙겨주기도 한다. 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이 키워주다시피 해서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린 시절 언니, 오빠들과 함께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러 갔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처럼, 나도 아이들과 <번개맨>을 보러 가면 특별한 기억이 되지 않을까.
-번개맨처럼 날고 싶어 하는 아이 한나는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감독님이 톤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달라고 하더라. 한나와 내가 비슷한가 보다. (웃음) 다만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대를 연기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했다. 노래도 너무 잘 부르려고 하지 않고, 담백하게 기교를 다 빼고 아이처럼 불렀다.
-특수한 복장과 과감한 헤어스타일 등을 소화했고 와이어 액션에도 도전했다.
=헤어스타일은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앞머리를 하트 머리로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더라. 나중엔 파리 더듬이가 됐지만(웃음) 그게 트레이드 마크다. 한나가 메고 다니는 로켓은 굉장히 무겁다. 항상 담에 걸려 있었고, 침을 맞으며 버텼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로켓이 그립다. 와이어 액션은 정말 재미있더라. 그네를 즐겨 탄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지금도 스트레스 받으면 집 앞 놀이터나 한강에 나가 그네를 타곤 한다. 날고 싶어 하는 한나 캐릭터에 딱이다. (웃음)
-지난해엔 <복면가왕>의 ‘황금락카 두통 썼네’로 1, 2대 가왕을 석권해 대중에게 그룹이 아닌 개인으로서 이름을 알렸다.
=사실 노래에 자신감이 없었다. 원래 내 전공은 춤이었고, 노래에 대한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아니다. 열여섯살 때 데뷔하면서부터 대중 앞에 나서 평가를 받으니 힘들어지더라. 노래를 위해 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놔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듯한 슬럼프가 오더라. 그때 기회로 온 게 <복면가왕>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인정받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 연습한 만큼 못 보여드려 아쉽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했다. 이후엔 곧바로 <번개맨>의 촬영에 들어갔다. 시청률이 얼마나 나왔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날 좋아해주고 있다는 것도 실감하지 못할 때였지만, 감독님이 조금만 열심히 해도 칭찬해주시니 촬영하는 동안 밝게 웃게 되더라. 행복한 기운을 이어간 것 같다.
-<번개맨> 개봉을 앞둔 지금의 루나는 어떤가.
=이젠 실패가 두렵지 않다. 원래 나는 뭐든지 성공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런데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실패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거기서 얻는 교훈이다. 한나는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도 계속 날고자 도전한다. 나도 아직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더 많다. 십분의 일도 못 보여드렸다. (웃음) 최근엔 감사한 일이 많이 생긴다. 얼마 전 지코와 함께한 음원이 나왔는데, 이렇게 솔로로 참여한 곡이 순위권에 든 건 처음이다. 2월 하순엔 f(x) 첫 일본 투어를 시작한다.
-그룹 재정비 후 4번째 정규앨범 《4walls》를 발매하며 f(x)의 행보는 더 확실해지고, 연대는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유대감이 훨씬 더 강해졌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멤버들이 워낙 착하고 말을 잘안 하는 성격이라 굳이 싸우지 않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오해가 생기기도 하더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멤버들 얘기만 나오면 울컥하는데. (웃음) f(x)라는 그룹이 얼마나 소중한 그룹인지 보여줘야 하고,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틈도 보여주면 안 되니까 더 독하게 열심히 했다.
-f(x)의 첫 번째 콘서트 <DIMENSION4-Docking Station> 준비는 잘돼가나.
=데뷔 7년 만의 콘서트니 얼마나 보여줄 게 많겠나. 밤새 연습하고 있다. 욕심을 많이 냈다. 팬들이 보고 싶다고 언급한 곡들은 다 넣으려고 노력했고, 기존의 익숙한 곡들은 편곡을 다시 해 새로운 느낌을 냈다. 이번은 4명이 함께하는 첫 콘서트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솔로 무대 없이 전부 함께하는 무대다. 힘들더라도 다 같이 준비하자는 마음이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음악적으로도 궁금하고, 연기를 계속 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요즘 작사, 작곡에 빠져 있다. 한나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곡이 있는데 얼른 공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루나 개인으로서도 음악적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기회가 되면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나는 노래라는 특기가 있으니 뮤지컬영화나 음악영화에 잘 맞지 않을까. 주연은 아니더라도 색깔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복면가왕>의 ‘황금락카 두통 썼네’
2015년 예능 <복면가왕>의 1대, 2대 가왕을 석권한 ‘황금락카 두통 썼네’의 정체는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 f(x))의 루나였다. ‘황금락카 두통 썼네’는 경쾌한 <나는 나비>의 무대로 시작해,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담은 <엄마>, 깊은 감성의 <편지할게요>, 곁에서 나지막이 위로를 건네는 듯한 <혼자라고 생각 말기>, 애절한 듯 담백한 <슬픈 인연>의 무대를 선보여 시청자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무성한 추론과 반론과 재반론의 공방이 오가고, 마침내 그녀가 가면을 벗자 예측했던 사람도, 하지 못했던 사람도 환호했다. “어머니조차 몰라본” 가왕의 마스크는 루나의 음악적 역량을 재평가하게 해준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