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합본호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일단 특집은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넷플릭스’다. 주무를 맡은 장영엽 팀장이 힘겹게 저 멀리 말레이시아까지 드라마 <마르코 폴로> 현장 취재를 다녀왔고 김성훈, 김현수 기자는 편하게 서울에서 기사를 썼다. 입문자들을 위한 가이드부터 장차 국내 콘텐츠 업계에 미칠 영향까지 꼼꼼히 분석했다. 대체휴일까지 포함하여 기나긴 연휴를 위해 더없이 유용한 기사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무료가입 한달 동안 넷플릭스에 빠져 지냈다. 가장 몰입해서 본 것은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였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주인공은 거짓 자백을 해서 충분히 가석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나중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그는 자신을 범인으로 내몬 피해자를 탓하지도 않는다. 피해자의 진술을 자기들 뜻대로 유도한 경찰의 잘못이라는 거였다. 얼마 전 세상을 뜬,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들춰본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더불어 최근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다시, 부산국제영화제에 관한 것이다. 여러 번 기사를 통해 영화제를 향한 무한지지 입장을 밝혀온 <씨네21>은 다시 한번 부산시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번에 장문의 특별기고문을 보내온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글 속에서 언급된 과거의 한국인 유학생은 바로 김우형 촬영감독이다. 몇해 전 <우리시대 영화장인>이라는 책을 쓰면서 그를 만나 인터뷰하며 알게 된 내용을 좀더 덧붙이고자 한다.
당시 무작정 런던으로 가서 런던영화학교에 지원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연장된 비자가 끝나기 직전에 합격통보를 받고는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였다. 1993년 가을부터 1996년 겨울까지 런던에 머무르던 몇년 동안, 한국에서는 서해 페리호가 침몰했고 성수대교가 주저앉았으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선진국’ 영국 런던에서 지내며 그가 느낀 세상은 더없이 불공평했다. 그러다 1996년, 직접 출연도 하고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픽션과 다큐가 결합된 실험적 스타일의 <돌출>이라는 단편을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놈의 학교는 불에 타 마땅하다’며 학교를 폭파시키면서 끝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첫 시사회장은 난장판이 됐고 담당 교수의 얼굴을 벌겋게 상기됐다.
그런데 <돌출>은 그해 졸업영화제에서 정식으로 상영됐다. 김우형 감독 또한 놀랐다고 했다. 놀라운 건 상영 직전 총장의 특별한 무대인사(?)였다. 종이 한장을 들고 앞에 나간 그는 <돌출>의 졸업영화제 프로그램 선정에 반대한 네명의 교수가 쓰고 서명한 항의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런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상영한다’는 거였다. 토니 레인즈가 기억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지 입장이었다. 그게 바로 20년 전 런던의 한 영화학교에서 있었던 일이고, 그해가 바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첫회를 시작한 해다. 왜 자꾸 부산국제영화제를 학교 졸업영화제보다 못한 영화제로 만들려고 하나, 누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