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 윌리스가 실은 두명이라서 한명은 ‘웃기는 이야기’를 쓰고, 다른 한명은 ‘슬픈 이야기’를 쓴다.” SF소설상을 받은 중•단편집인 <화재감시원>에 코니 윌리스 자신이 인용한 자신에 대한 루머다. 사랑스럽고도 유머러스한 <리알토에서>와 우스운데 무섭기도 한 <나일강의 죽음>, 폐허 앞에서 머릿속에 울리는 말러 교향곡 9번을 듣는 듯한 <화재감시원>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할리우드, 리알토 호텔. 양자역학에 대한 학회에 참석한 주인공이 모델/배우/호텔직원에게 “예약했다”고 몇번이고 반복해 말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약은 했는데 예약이 되지 않았단다. 분위기를 봐서는 이 호텔을 찾는 학회 참석자 모두가 이 호텔 아니면 저 호텔에서 퇴짜를 맞는 불확정성 아수라에 빠져 있다. 그리고 시종일관 주인공을 보는 사람마다 ‘데이비드’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그를 피하는 중이고, 주변에서는 둘이 한 세트인 줄 안다. 그는 그녀와 “격렬함에 대해서” 알아가려는 중이다. 둘 사이를 알 법하면 양자역학에 대한 이런 저런(“우주 양쪽 끝에 있는 전자 두개가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시공 연속성에 대한 이론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어쩌고저쩌고) 이야기가 끼어든다. 게다가 주인공부터가 양자역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인상이 아니다. 모든 계획은 어긋나고, 어긋나고, 어긋나서, 화살은 과녁에 적중… 하려나?
첫 번째 수록작인 <리알토에서>가 스크루볼 코미디처럼 진행된다면, <나일강의 죽음>은 TV시리즈 <환상특급> 분위기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애거사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이 몇번이고 언급되는데, 줄거리가 이상하게 인용된다. <나일강의 죽음>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읽었을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대해서도 이 책은 언급하는데, 이런 식이다. “한 사람씩 차례로 살해되는 영화가 그거였나요?” 줄거리는 완전히 잘못 이야기되는 중이고,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어딘가 비틀려 있음에 틀림없다.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 <개는 말할 것도 없고> <화재감시원>과 세계를 공유하는 <화재감시원>은 런던 세인트폴 성당 공습시기로 시간이동한 역사학도의 모험담이다. 1983년, 그러니까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도 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이 중편소설은, (2015년이 지나고 얼마 안 돼) 세인트폴 성당이 결국 폭파될 것이라고 설정했다. 주인공은 시험을 앞두고 실습차 시간여행을 떠난다. 죽을지도 모르는 대공습 시기의 런던, 그것도 세인트폴 성당의 지하묘지에서 잠을 자며 공습이 있을 때 뛰어올라가 불을 끄는 화재감시원으로. 그의 선임이랄 수 있는 랭비가 몹시 수상쩍기 때문에 그는 세인트폴 성당을 망치는 게 나치가 아니라 랭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기 시작한다. 시간여행의 부작용으로 그는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그는 고양이를 본 것에 마음속으로 흥분하는 중이다. “나는 고양이에게 푹 빠져버렸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이곳에서는 고양이가 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가 사는 시대는 시간여행이 가능해졌지만, 어떤 것들은 영영 인류의 품을 떠나버렸다. <화재감시원>은 역사적 사실 속 숫자로만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묻는다. “교수님에게는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교수는 답한다.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중요하지. 개개인으로는 역사의 진행 방향과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어.” 교수의 대답에 (우리 모두를 대신해) 주인공은 교수의 턱에 주먹을 날린다. 결국 지켜내지 못할 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 우리가 그들을 ‘안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보게 될까.
원한 곳이 어디든, 코니 윌리스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확실히 안내한다. 내내 부산하다가, 어느 순간엔 웃게, 어느 순간엔 울고 싶게 만든다. 고유한 스타일이 어떤 장르와도 상승작용을 일으키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