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한 칼럼니스트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글을 발표했다. 반발은 거셌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세간의 반응이 확 변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남성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조차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하고 운을 떼던 과거의 풍토가 무색하게도, 버젓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못 박고 한국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온갖 부조리들을 끄집어냈다. 같은 해 4월, 때마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한국어판이 도착했다.
저자 리베카 솔닛은 역사를 거슬러 걷기의 면면을 살핀 <걷기의 역사>(2001), 지난 100년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을 들여다본 <이 폐허를 응시하라>(2009)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건실한 저술들을 발표해왔다. 현지에서 2014년에 내놓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작가가 그간 여러 저서에서 꾸준히 드러냈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전면에 드러나는 책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모은 이 책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뜻하는 ‘맨스플레인’에 대해 쓴 표제문을 필두로 동성결혼, 제3세계 착취, 예술비평 등 다양한 주제에 시선을 던진다. 특히 5장 ‘거미 할머니’와 6장 ‘울프의 어둠’은 각자 (책 여기저기에 사용된 그 이미지를 그린)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와 몇몇 화가,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을 경유한 사유로서 빼어난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다만 이런 구성은 도발적인 책제목에 상응할 만한 말초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을 기대할 독자에게 얼마간 차분한 독서를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13년째 OECD 국가 중 남녀간 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헤어진 여자친구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일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지난해 <조선일보>, <중앙일보>•교보문고, <시사IN> 등 정치적인 방향을 막론한 매체들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의미 있는 충돌
두 세계가 충돌했다. 과거였다면 그녀의 말은 그의 말에 눌려 무가치하다고 여겨졌을 테고, 그녀는 아마도 고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했고,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는 구속되었으며, 유럽 경제는 충격을 감당하고 있고, 프랑스 정계는 발칵 뒤집어졌고, 온 프랑스가 휘청거리면서 반성하는 중이다.(68~69쪽)
지구의 파괴는 결국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거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헤아릴 줄 모르는 계산체계가 우리의 상상력을 가린 탓이다. 이런 파괴에 맞서는 반란은 상상력의 반란이다. 미묘한 것, 돈으로 살 수 없고 기업이 구사할 수 없는 즐거움, 의미의 소비자가 되기보다 생산자가 되는 것, 그리고 느린 것, 배회하는 것, 일탈하는 것, 캐묻는 것, 신비스러운 것, 불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반란이다.(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