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자신이 열살인 줄 알고 살아가는 소년 모모다. 부모의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는 고아로 자랐지만, 그의 곁에는 삶의 쓰라림을 함께 견디는 친구들이 있다. 과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로자 아줌마는 모모뿐만 아니라 비숑 거리에 사는 창녀들의 아이를 보살핀다. 양탄자를 팔며 평생을 떠돌아다녔던 하밀 할아버지는 비숑에 정착해 모모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그 밖에 모모의 주변은 매춘부, 이주노동자, 고아, 유대인, 아랍인, 범죄자 등 평범한 세상 바깥에 놓인 이들로 가득하다.
소중한 것의 가치는 진창 같은 역경을 딛고 선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고 했던가. 에밀 아자르는 명확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각성을 새삼 강조한다. <자기 앞의 생>에는 제 믿음을 맹목적으로 설파하듯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모모와 그 이웃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지만 소설은 내내 빛을 잃지 않는다. 이야기가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을 통해서 나아감과 더불어, 고귀한 말 ‘사랑’이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환기를 계속해서 퍼트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듣고 입에 담으며 자란 모모는 고개를 떨군 채 “사람은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해준 하밀 할아버지에게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말을 돌려준다. 그리고 본래의 얼굴을 점점 잃어가는 로자 아줌마의 화장을 고쳐주며 곁을 지키면서 자기가 받았던 헌신에 보답하고자 애쓴다. <자기 앞의 생>은 하루아침에 훌쩍 나이를 더하게 된 모모의 중얼거림으로 맺는다. “사랑해야 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페이지가 아직 남아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필명 에밀 아자르를 앞세워 <자기 앞의 생>을 비롯한 4개의 소설을 발표한 로맹 가리가 쓴 최후의 에세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실렸다. 이 글은 생애 단 한번 받을 수 있는 공쿠르상을 살아서 두번이나 차지하게 된 소설 같은 사연을 전한다. 작가가 권총 자살로 삶을 놓은 지 반년이 지나 공개된 스무 페이지 남짓의 산문은,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남긴 작별인사라고 일컬어진다.
사랑을 지키는 이야기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96~97쪽)
그녀는 이제 더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한두번 뽀뽀도 해주었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다. 화려한 기모노 차림에 붉은 가발을 쓴, 내가 화장을 해준 아줌마는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군데군데 점차 푸르죽죽하게 변해가는 그녀의 얼굴 화장을 고쳐주었다. 나는 그녀 곁의 매트에서 잠을 잤다. 바깥에 나가기가 두려웠다.(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