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는 그 동영상에 대해 “굴욕적인 사과”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의 ‘자아비판’ 형식을 본뜬 사과라고 했다. 대만의 한 여성은 한글로 작성한 호소문에서 “총만 없다 뿐이지 흡사 IS가 인질을 죽이기 전에 찍는 동영상”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아이돌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멤버 쯔위의 사과 동영상, 근래 본 동영상 중 가장 끔찍한 영상이었다. 화장기도 없고, 핏기도 없는, 파리한 얼굴의 17살 소녀가 미리 준비된 사과문을 읽어내려가는 1분27초 분량의 영상 속엔 정작 쯔위의 진짜 목소리는 없었다. 그저 정치적 힘의 논리와 자본이 어린 소녀의 등을 떠밀어 연출한 복화술에 다름없었다. 나고 자란 조국의 국기를 흔든 게 그렇게 잘못인가. 쯔위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자기 나라 국기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게 잘 가르치는 일인가? 쯔위의 대만 부모는 자식에게 대만 국기를 흔들지 못하게 교육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양안관계에 예민한 중국에서 대만 소녀를 앞세워 한류 사업을 하는 처지에 청천백일기 같은 민감한 상징 소품을 체크하지 못한 1차적 책임은 당연히 JYP에 있다. 중국 시장이 자신들에게 그렇게 중요하다면, 대표 본인이 동영상에 직접 출연해 사과했어야 했다. 쯔위에게 청천백일기를 흔들게 했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방송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은 17살 소녀에게 사건의 무게를 다 짊어지게 한 채 카메라 속으로 등을 떠다밀고 자아비판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든 한편의 ‘잔혹 동영상’ 뒤편으로 숨고 말았다.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없고, 오직 뒤에 숨어 떡고물만 주우려는 졸렬한 어른들만 있었을 뿐이다.
돈을 위해서는 잘못이 없어도 빌게 만들고, 패권 국가의 눈칫밥을 얻어먹기 위해 자기 정체성도 기꺼이 부정하게 하는 이 약삭빠른 속물근성은 어쩌면 친일 부역의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한국 지배층의 영혼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일본과의 공조 체제를 위해 기껏 100억여원에 위안부 역사를 지우겠다는 굴욕의 합의를 한 박근혜 정부나, 중화 패권주의 시장의 압력에 굴복해 어린 소녀를 정치 희생양으로 기꺼이 공조한 사기업이나 그 속물근성이 도긴개긴이다. 사건의 책임과 슬픔을 당사자들에게 전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그 무책임한 태도도 똑같다. 도망치듯 졸속으로 일을 처리해 더 큰 화를 불러들이는 그 경박한 무능력도 똑 닮았다. 책임감은 없고 그저 사익에만 눈이 먼 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저 17살 소녀의 슬픈 동영상이 바로 그 명백한 증거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