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에 매혹당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아니, 그 이전에 매혹이란 어떤 성질의 현상일까를 고민해봤다. 그건 아마도 ‘되돌아갈 수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매혹당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려 아무리 애써봤자 별무소용인 상태. 매혹은 또한 ‘출구 없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매혹이란, 당신이라는 세계 속에서 내가 속수무책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최근에 이런 유의 노래를 만났다. 방백이 부르는 <동네>라는 곡이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음반을 쭉 듣다가 거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 곡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도 나는 이 곡을 듣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으며, 꽤 오랫동안 이 곡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을 거라는 예감이 머릿속을 쓰윽 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이 곡이 일궈낸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 방백이 인터뷰에서 밝힌 ‘어른의 음악’이라는 고백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 먼저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할 수 있다. “눈 시린 한밤중에/ 우린 사라지는 별똥별을 지켜보면서/ 서로를 보듬고 토닥였지.” 그러고는 합창이 이어진다. “더러운 동네에서 어여쁜 동네까지/ 어여쁜 동네에서 더러운 동네까지.” 그래. 옳다구나. 이것이 어른의 자세로구나. 더러움과 어여쁨이라는 현실의 양극단을 아우를 줄 아는 것. 그러면서도 별똥별로 상징되는 희망의 정서를 잃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그들은 결코 청춘들을 향해 ‘함부로’ 희망 섞인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먹먹해질 것임을 알기에, 자신들이 부르는 이 노래가 부디 그들에게 가서 닿기를 바랄 뿐이다. 이 곡을 되풀이해 들어도 쉬이 질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걸 우리는 참된 매혹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