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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버풀의 로맨티스트
김성훈 2016-01-21

<스티븐 제라드 마이 스토리> 스티븐 제라드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요즘 한 클럽만 고집하는 축구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의리보다 돈이 우선하는 시대가 아닌가. 스티븐 제라드가 존경스러운 건 단지 AC밀란을 상대로 한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0 대 3으로 뒤지던 시합을 뒤집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스탄불의 기적’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다. 1998년 리버풀에 입단해 2015년 LA갤럭시로 옮기기까지 17년 동안 줄곧 고향팀 리버풀에서만 504경기를 뛴 ‘원 클럽 맨’이라는 사실이 대단하다. 긴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미드필드로 활약했지만, 그가 들어올린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우승컵을 수집할 수 있었음에도 제라드는 끝내 리버풀에 남았다. 제라드만큼 리버풀을 사랑한 선수는 없었고, 그는 리버풀의 자랑거리이자 로맨티스트였다.

이 책은 선수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보통의 자서전과 다르다. 프리미어리그 2013∼14시즌이 시작하기 직전부터 2014∼15시즌이 끝난 뒤 리버풀을 떠나기까지 2시즌 동안의 기록이 자서전의 큰 줄기다. 알렉스 퍼거슨이 일으켜 세운 왕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르센 벵거의 아스널,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같은 오일 달러로 중무장한 신흥 강호에 비해 자금 능력이 부족해 갈수록 쇠락하던 리버풀을 팀의 맏형으로서 간신히 지탱하던 시기였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리그 일정 사이에 어린 시절, 잉글랜드 대표팀, 힐즈버러 참사(1989년 4월15일 잉글랜드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을 관람하던 축구팬 96명이 압사당한 사건), 첼시 감독 조세 무리뉴로부터의 이적 제안 등 제라드의 다양한 사연들이 플래시백처럼 끼어든다. 야구영화 <사랑을 위하여>(1999)에서 은퇴를 앞둔 투수 케빈 코스트너가 마지막 게임이 될지도 모를 마운드에 올라 9이닝 동안 공을 던지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처럼 말이다.

“오늘 경기는 끝났어. 승리는 잊어. 다음은 노리치 원정이야. 오늘과 똑같이 하자.” 2013∼14시즌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34라운드 시합에서 3 대 2 승리를 거둔 뒤 제라드는 후배 선수들을 불러모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10연승을 거두면서 1990년 이후 단 한번도 리그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리버풀의 한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우승할 때까지는 긴장감을 풀지 말자는 독려에 가까웠다. 이처럼 그라운드 안팎에서 캡틴 제라드는 항상 자신보다 팀이 먼저였다. 감독이 영입하고 싶은 선수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리버풀로 와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팀을 떠나려는 선수를 붙잡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2013∼14시즌이 시작되기 전 아스널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 팀을 떠날까 고민하던 루이스 수아레즈(현재 FC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다)에게 한 시즌만 팀에 남아 있어 달라고 설득했던 일화를 보면서, 제라드의 역할이 단순히 선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있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자서전에는 화려했던 업적보다는 팀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했다. ‘노멀 원’ 클롭 감독이 이끌고 있는 올시즌 리버풀 경기가 떠오르면서 그가 자꾸 생각났다. 새 캡틴 조던 헨더슨으로는 안 돼. 제라드 같은 묵직한 중원의 조율자가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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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로맨티스트 <스티븐 제라드 마이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