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재현의 강박을 버리고 새롭게 써내려간 이야기 <스티브 잡스>
송경원 2016-01-20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선다. 인물의 전기를 충실히 따라가는 것과 상상력을 부어 새롭게 각색하는 것, 두 성분의 함량을 어떻게 조정하는가에 따라 영화의 톤은 확연히 구분되기 마련이다. 대니 보일 에런 소킨의 조합에 대해 들었을 때 당연히 후자를 중요시 하리라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이렇게까지 자유분방하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 <스티브 잡스>는 사실 재현의 강박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써내려간 이야기다. 에런 소킨은 인간 ‘스티브’에 주목하는 대신 ‘잡스’라는 상징이 우리에게 던져준 것들, 그를 둘러싼 구설들, 대립되는 가치들을 수집해 압축적으로 구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록스타에 가깝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연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그의 삶은 무대 위에서 더 빛난다. 대니 보일은 1984년 매킨토시 론칭, 1988년 넥스트 큐브 론칭, 1998년 아이맥 론칭을 위한 세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연극의 3막 형식처럼 무대에 올린다. 각 40분간 세번의 시퀀스로 이뤄진 영화는 프레젠테이션 직전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간다.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1984년은 16mm, 88년은 35mm, 98년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는 공을 들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쏟아지는 상황과 대사를 기둥 삼아 잡스라는 20세기 아이콘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구조를 해석한다. 엔지니어 앤디 허츠펠드(마이클 스털버그)를 압박하고, 옛 연인 크리산 브레넌(캐서린 워터스턴)을 경멸하며, 공동 CEO 존 스컬리(제프 대니얼스)와 대립하는 모습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라는 사태를 둘러싼 모순들을 대표하는 상징들이다. 여기서 세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반복되는 3막 구조는 영리한 선택이다. 같은 상황, 같은 사람들을 대하는 잡스의 태도가 어떻게 미묘하게 바뀌는지를 통해 캐릭터에 피와 살을 돌게 한다. 이를 전기영화라 부를 수 있을지는 미뤄두더라도 기본적으로 신선하다. 잡스를 신격화하지도 일방적으로 헐뜯지도 않는 균형 감각도 좋다. 다만 그 정교하고 기계적인 구조가 지나친 기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과한 장식에 밀려 정작 내용물이 밋밋해 보인다. 게다가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어도 스티브 잡스가 지워지고 마이클 파스빈더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건 전기영화로서 실패에 가깝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