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자 화가이기도 한 기린은 지난 몇년간 꾸준히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그는 뉴잭스윙과 알앤비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90년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기린은 90년대를 유행이나 향수가 아니라 ‘멋’으로 대우하고 체화한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인류 대다수에게 그렇듯 기린에게도 세상은 살기 힘들었다. 혈혈단신으로 투지를 불태웠으나 그는 가끔씩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쳐갈 때쯤 다행히 마음 맞는 동료를 규합하기에 이르는데,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에잇볼타운’(8BallTown). 기린이 재규어중사, 플라스틱키드(Plastic Kid), 위키즈(WEKEYZ), 요요(Yoyo) 등 자신과 음악적 색깔이 맞는 뮤지션과 함께 설립한 레이블이다. 뭔가 무협소설의 첫장 같지만 대충 사실이니 그냥 넘어가자. 레이블 설립 후 처음 발표하는 단체곡인 이 노래는 그동안 기린이 드러낸 음악적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은 물론, 레이블의 성격도 고스란히 내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8BallTown(You Are Not Alone)>은 최소한 2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만나볼 수 있는 알앤비 스타일 위에 각종 철 지난 것을 총집합시켰다. 하지만 ‘철 지난 것’이 ‘훌륭하지 않은 것’의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단지 현재의 가장 뜨거운 음악이 아닐 뿐. 오히려 이 노래는 기린이 점점 한 분야의 마스터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안긴다.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낭만은 오글이 아니라 낭만 그대로임을 여전히 믿는 이들의 취향을 저격하면서. 아, 자매품으로는 최근 발매된 위키즈의 싱글 <Want Me Girl>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