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은 방은 두개지만 몹시 좁고, 한겨울 보일러 문제로 속을 썩인 적이 있는 노후 주택이다. 지금의 집에 불만이 거의 없는 이유는 교통이 편하고 대체로 한국에서 좋다고 하는 집들이 별로 욕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살았거나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집이라면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은 ‘실외지만 집 안인 공간’이 있는 집이다. 앞마당이나 뒤뜰, 중정이 있는 게 좋다. 한때 살았던 집처럼 욕실에 난 창문으로 무성한 숲의 꼭대기가 보이고 그 창을 통해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의 빛이 드는 정도도 좋겠다. 야마시타 카즈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갔다. ‘다도실이 달린 전통가옥’을 직접 짓기로 결심했다. 야마시타 카즈미로 말하자면 <천재 유교수의 생활> <불가사의한 소년>을 연재하는 만화가. 그는 어느 날 망년회에서 알게 된, 전통가옥에 관심 있는 건축가와 의기투합해서 집을 짓기로 한다. 베스트셀러를 거느린 장기 연재 만화의 작가다운 호쾌함이다 싶었는데, 그 집을 짓는 과정을 만화로 그린 <지어보세, 전통가옥!>을 읽어보면 역시 집 한채 짓기란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청년, 난민 되다>의 청년들에 비교하면 금전적으로 압도적인 출발점에 선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적당한 땅 구하기부터 난관이다. 주택을 짓기로 결심한 이상 창밖의 경관도 따지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토지 매입과 주택 건축에 드는 돈 마련이다. 1300만엔이나 깎아 마음에 쏙 드는 대지를 매입하지만, 사실 작가는 금전 사정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작가에게는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빈 주택을 매각한 돈도 있었는데! 일은 죽도록 한다. 크리스마스도 설도 없이 오로지 일, 설날 아침에 일을 안 한 적이 없으며 일 하나를 끝내면 체력 고갈로 앓아눕고 일어나면 다시 일을 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가 이 만화 곳곳에서 펼쳐진다. 거의 넓이가 같은 옆집과 작가의 집은 월세가 9만엔 정도 차이났다. 당연히 작가의 집이 더 비쌌다. 아버지의 주택을 팔고 남은 돈은 10년 뒤가 만기인 연금형 보험에 넣고, 각종 펀드에 투자해버리는 식의 일이 몇번이고 반복되다가 펀드는 폭락했고 보험은 해약하면 엄청나게 손해 보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출판계는 불황. 작가는 오직 원고료로 생활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건축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젊은 건축가는 작가만 믿고 퇴사해버리고, 남은 길은 대출뿐! 막대한 대출금을 갚기 위해 작가는 근검절약을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가난해지는 마법이 <지어보세, 전통가옥!>에 존재한다. 원하는 집 짓는다기에 부러워하다가, 대체 금융상품이란 무엇인가 골몰하게 되더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돈 잘 버는 사람도 가난해지는 마법
글
이다혜
2016-01-14
<지어보세, 전통가옥!>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미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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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돈 잘 버는 사람도 가난해지는 마법 <지어보세, 전통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