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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헬>의 연쇄살인마를 추적해온 범죄소설가 패트리샤 콘웰
2002-03-21

잭 더 리퍼의 스토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도전을 이끌어내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인간의 도전에 경의를 표하고 실체를 드러낸 수수께끼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수수께끼들도 정말 무한하다고 할 정도로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UFO를 이야기하고,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을 이야기하며,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책을 읽는다. 물론 그 이유는 대부분 수수께끼라는 것이 주는 묘한 긴장감을 즐기기 위한 것이지만, 간혹 자신이 궁금해하던 수수께끼 하나가 풀려나갈 때 가질 수 있는 희열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설 속의 연쇄살인범이자 <프롬 헬>의 소재가 된 잭 더 리퍼가 아직까지도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것도, 아마 그런 희열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수수께끼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 팬클럽 회원 중에 최근에 아주 유명해진 여성이 한명 있다. 바로 범죄소설가인 패트리샤 콘웰.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해 12월 다이앤 소여가 진행하는 <프라임타임>이라는 뉴스쇼에 출연해 잭 더 리퍼의 실체를 밝혀냈다고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범죄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로 자신의 작품에 등장할 연쇄살인범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잭 더 리퍼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수수께끼 같은 행적에 빠져들었다는 그녀는, 지금까지 무려 50여억원의 재산을 증거 확보를 통한 실체의 파악을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열성 팬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잭 더 리퍼의 스토커’라고 부르는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잭 더 리퍼의 실체는 당시 사건의 무대인 이스트 런던의 화이트차펠구역에서 살고 있었던 리처드 시커트라는 인상파 화가라는 것.

그녀가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데는 리처드 시커트의 독특한 작품 이력이 가장 큰 작용을 했다. 한때 런던의 극장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로 알려졌던 그는 1908년에서 1909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작품의 소재를 변경했는데, 그게 바로 어두컴컴한 방 안에 살해당했거나 혹은 살아 있는 창녀와 코트를 걸친 남자가 한명 있는 모습들이었다. 이른바 <Camden Town Murders>라고 불리는 그 연작들에 대해, 패트리샤 콘웰은 그림이 그려지기 약 20여년 전에 일어났던 잭 더 리퍼 사건 당시의 사진들과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그중 한 작품은 마지막 희생자였던 메리 켈리의 방과 똑같이 그려지기도 했음을 강조했다. 그런 유사성에 대해 그녀는 모든 연쇄살인범이 훗날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에 대한 환상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살인현장으로부터 한 가지씩의 기념품을 가져오게 마련인데, 리처드 시커트는 현장의 스케치를 가져와 나중에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 작품에 1억원을 호가하는 리처드 시커트의 작품 30개를 구매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그녀가 주장한 몇 가지 증거들은 이렇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리처드 시커트가 문제의 연작들을 그릴 때 꼭 빨간 손수건을 작업실에 놓아두었는데, 그것과 메리 켈리가 살해당하기 직전 용의자로부터 빨간 손수건을 건네받았다는 목격자의 진술과 일치한다는 것. 또한 어린 시절 학대하는 아버지와 몇 차례에 걸친 대수술 그리고 그로 인한 성적인 불구가 다른 연쇄살인범들의 일반적인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그녀의 주장이다. 하지만 리처드 시커트가 잭 더 리퍼의 실체가 아니냐는 주장은 이미 1960년대부터 있어온 것이 사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리처드 시커트가 그린 연작들 때문에 생겨난, 전혀 증거도 없는 신빙성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해왔다.

그런 반론을 패트리샤 콘웰이 모를 리는 만무한 일. 따라서 그녀는 사건이 있던 당시 범인이 쓴 것처럼 경찰과 언론사에 보내졌던 많은 편지들에 대한 조사권한을 영국 정부로부터 받아, 그 편지들에서 발견되는 DNA와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DNA에 대한 비교분석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정부의 문서보관실에 보관하기 위해 열처리가 된 편지들에서는 어떠한 DNA도 발견되지 않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단, 그 과정에서 정부에 의해 보관되고 있지 않았던 편지 한통이 발견되었고 거기에서도DNA가 검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하던 편지지로 쓰였음이 밝혀졌고 그 편지지를 리처드 시커트도 사건 당시에 쓰고 있었음이 증명되면서 그녀의 주장에 어느 정도 신비성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편지가 잭 더 리퍼로부터 온 것인지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은 사실. 하지만 거기서 힘을 얻은 그녀는 어떻게든 물질적 증거를 찾기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 일을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살인마에 의해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특히 “단죄되어 마땅할 살인마가 신격화되어 영화 속의 스타로 등장하는 현실은 개탄스러울 뿐”이라며, 최근작 <프롬 헬>의 개봉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물론 그녀의 그 모든 주장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녀가 희생된 영혼들을 영화 속의 소품이 아닌 치유돼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프롬 헬> 공식 홈페이지 http://www.fromhellmovie.com/

에디 캠벨 공식 홈페이지 http://www.eddiecampbellcomics.com/

잭 더 리퍼에 대한 패트리샤 콘웰의 주장 http://abcnews.go.com/sections/primetime/DailyNews/pt_ripper_0112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