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살펴보고 닦고 기름치고 조여야 할 것들을 무시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요가학원에 가서 강사의 말에 따라 반듯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갑자기 전신의 통증이 심해진다. 그냥 누워서 눈을 감고 호흡만 신경 써서 해도 그 지경이다. 삶의 문제들 역시 대체로 그러하다.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쓰다가 재정상태를 살피는 순간, 매일 누군가와 만나다가 인간관계를 돌아본 순간, 커리어가 어쨌든 굴러는 간다 안도하다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순간, 모든 것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세시>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겁을 먹고 걸음을 서두르느라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어느 날 우편함을 보니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시시한 고지서로는 “당신은 서른넷입니다”가 있고, 조금 심각한 편지로는 “당신이 재미있어 하던 것들이 재미없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습니까? 새로운 재미 역시 원활히 공급되지 않을 것임을 알려드립니다”가 있으며, 심각한 편지도 있었으니 “작업의 샘이 말랐습니다. 새로운 샘을 찾아 떠나겠습니까? 주의: 영원히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름”, 마지막으로 가장 절망적인 편지는 “귀하가 그동안 메우려고 했던 마음의 구멍은 평생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였다. 그래서 이 책은 ‘장송곡’으로 시작한다.
여기,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만드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즐기는 일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결국 시간을 갖기로 하고 교토로 떠난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편의 소설 같다(참고: 이 책은 에세이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의 소소한 일들이 그려지고, 2007년 첫 앨범을 직접 제작하던 때로 잠시 플래시백했다가, 십대 때 미래의 자신의 삶을 바라며 적었던 글귀로 클로즈업한다. 고개를 들면 갑자기 현재. 아주 더디게, 뭔가를 사거나, 먹거나, 구경하거나, 기대하거나, 후회한다. ‘정신과’라는 제목의 장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것이 어딘가 슬프고 아련한 소설 주인공의 이야기 같다. 하지만 탈진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이 갑자기 천둥 같은 음향효과를 거느리고 뚝 떨어지고 나면, 지금까지 읽은 글이 다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금선사’와 ‘솔직함에 대하여’ 그리고 ‘어떤 생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추천한다.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로 보이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 특유의 인장이 박힌 솔직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새벽 세시에 ‘익숙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사람이 갖는 차갑고 어두운, 매혹적인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