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크리스마스도 오지 않았는데 2016년 신년호의 에디토리얼을 쓰는 기분이 묘하다. 보통 에디토리얼은 최종 마감을 하는 목요일이면 부리나케 쓴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한주를 보내고는 목요일 저녁 식사를 끝낸 뒤, 마치 일주일 내내 그런 생각을 품어왔던 것인 양 단숨에 써내려간다. 이번주에는 어떤 내용으로 쓰면 좋을 것 같으냐고 함께 식사하는 기자들을 다그쳐 아이템을 캐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애꿎게도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급체가 왔던 기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를 전한다, 고 말은 하지만 내가 묻기 전에 아이템을 여러 개 준비해오길 권하는 바이다.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전 편집장들도 거의 대부분 그러했던 것 같다, 고 믿고 싶다. 아무튼 뭔가 1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창한 출사표를 내던지는 내용을 담고 싶은데 도통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아마도 밤 늦게까지 이어진 좌담 숙취의 영향인 것 같다. 2015년의 천만 영화 <암살>과 <베테랑>의 최동훈, 류승완 감독(당연한 얘기지만 우리의 방점은 절대 ‘천만’이 아니라 최동훈과 류승완이라는 그 이름이다), 그리고 2016년의 최고 기대작들인 <아가씨>의 박찬욱, <밀정>의 김지운 감독, <곡성>의 나홍진 감독을 만났다. 다들 새로운 작품 준비로 바쁘고, 현재 작품의 후반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으며, 특히 촬영 중이기까지 한 김지운 감독이 특별한 시간을 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만큼 그들의 지난 소회가 궁금했고 신작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오직 <씨네21>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일독을 권한다. 워낙 친한 사이다 보니 농담으로 시작한 이야기도 즐거웠고,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같은 세트를 재활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그냥 흘려듣기에 심각했으며, 저마다 이전 자신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닌 현재의 작품이 어떻게 완성될까 궁금해할 때는 호기심이 불꽃처럼 일었다. 그렇게 2016년을 향한 기대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다음 1037호에서는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 한재림 감독의 <더 킹> 등 또 다른 기대작들을 만나볼 예정이다.
몇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영화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한 젊은 해외 감독(도통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은 한국 감독들에 대한 호기심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물었다. 첫 번째, 한국 감독들은 정말 서로서로 친한 것 같다. 두 번째, 한국 감독들은 왜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가.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대담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서로서로 시나리오를 모니터해주고 이래저래 만날 일도 많다. 각종 시상식과 대담을 통해 서로 만날 일 또한 무지 많다. 지난 1035호 기획을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이와이 슌지 감독은 동년배 감독임에도 최근에야 서로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왜 만날 일이 없지? 그리고 진정 한국 감독들은 ‘내가 쓴 것만이 진짜 내 이야기’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뭘 그리 풀어야 할 자신의 응어리가 많은 것인지, 굳이 자신의 창작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담에 참석한 다섯 감독들도 거의 그런 경향이 있다. 전자를 두고서는 친한 감독들끼리 서로 닮아간다고, 후자를 두고서는 지나치게 자기세계에 빠져드는 감독의 불통을 꼬집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감독들의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라고 믿는다. 어쨌건 빨리 그들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두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