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루시드폴이 귤 모양 모자를 뒤집어쓰고 홈쇼핑에 등장했다.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홈쇼핑에서 자신의 앨범을 판매하기 위함이었다. 신보이자 통산 7집인 《누군가를 위한,》의 CD에 더해 직접 재배한 귤과 직접 쓴 동화책을 묶은 패키지 상품. 반응은 놀라웠다. 1천 세트가 단 9분 만에 매진된 것이다. 스위스 개그의 왕자가 ‘완판남’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색다른 홍보 방식으로 화제를 모은 루시드폴의 앨범에는 총 15곡이 담겨 있다. 제주도에서 작업했다는 이유 때문일까. 물처럼 유유하게 흘러가는 노래들이 하나둘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루시드폴의 음악을 이런 방식으로만 해석하는 것에 좀 반대하는 쪽이다. 언뜻 듣기에 그의 음악은 무심한 표정으로 낭만적 정취를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의 곡들 중 일부를 파헤쳐보면 거기에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이 송곳처럼 숨겨져 있다. 신보에서도 루시드폴은 타이틀곡 <아직, 있다>를 통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주렴.” 그는 마지막에 “살아주렴”이 아니라 “살아내주렴”이라고 가사를 썼다.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임을, 세월호를 향한 추모를 통해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비극적인 영화나 음악을 외면하곤 한다. 이런 영화나 음악을 (문법적으로는 어긋나지만) 들어‘내’는 것도 일종의 의무가 아닐까. 기억하는 것을 넘어 기록해야 할 의무를 잊지 않은 루시드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