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였다. 국제사회에서 최초로 성별(여성문제) 이슈가 정치적 의제로 채택된 역사적인 해였다. 제1회 세계여성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고, 138개국 2천명의 여성이 참가했다. 대회 주제였던 ‘평등•발전•평화’는 이후 각국 여성정책의 기본 좌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프랑스 여성운동가들의 ‘세계 여성의 해’ 제정 반대 시위였다. 그들은 “1975년 여성의 해, 76년 염소의 해, 77년 닭의 해, 78년 말의 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경찰과 격렬히 대립했다. ‘여성의 해’는 여성을 보편적인 인간에서 제외하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표준적 인간이 아니라 노인, 장애인, 어린이와 함께 ‘특수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남성의 해, 이성애자의 해, 비장애인의 해는 없다. ‘남성의 해’가 없는 것이 남성이 억압받는 증거인가. 이성애에 관한 책보다 동성애 관련 연구가 훨씬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이성애자 탄압인가. 올해의 키워드 중 하나는 ‘여성 혐오’였다. 이제까지 “여성운동이 남녀의 조화를 깨서는 안 된다”는 이중 메시지가 횡행했어도, 여성운동의 필요성이 전면 부정된 적은 없었다. 더 나아가 여성이 사회•경제적 우위에 있으며, 남성이 여성으로 인해 억압받고 있다는 주장이 공론장에서 이처럼 공격적으로 제기된 적도 없었다.
일부 우익 시민사회의 활동가(헤비 유저)들은 복지를 요구하는 계층, 생산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회적 약자, 이주민, 성적 소수자, ‘전라디언’은 비(非)국민이라는 인식 속에서, 국민의 범주에서 솎아내려는 문화적 제노사이드(인종청소)를 열성적으로 실천했다. 여성 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발언이 주로 비하와 모욕이었다면, 여성 혐오는 다르다.
이들의 요지는 여성이 약자가 아니라 약자인 척하는 강자라는 것이다. 여성은 지나친 평등과 권리를 요구하는 암적 존재로서 ‘여성 상위’, ‘기득권자’, ‘무임승차자’, ‘뻔뻔스러운 소비자’, ‘세계 유일의 여성부가 있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한국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58∼62%에 불과하고,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6배, 노동시장 진출의 질은 세계 104위, 성폭력과 가정폭력발생 세계 1∼2위라는 사실은 의미가 없다.
일부 남성들의 이러한 판단과 분노는 시비 여부를 떠나 여성의 차별 현실만큼이나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 평등에 관한 남녀간의 인식 격차가 이토록 큰 것은 한국 남성의 심각한 문화 지체 현상의 단면이다. 이들은 역지사지 능력이 없고 미러링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올해는 ‘여성 혐오의 해’가 아니라 ‘남성이 자기가 차별받는다고 선언한 해’였다. 40년 전 프랑스 여성들처럼 한국도 새로운 차원의 여성운동이 필요한 것 같다. 내년을 ‘남성의 해’로 정하면 어떨까. 마침 비슷하다. 원숭이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