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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시드니!>
문동명 사진 백종헌 2015-12-21

<시드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권남희 옮김 / 비채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서는 여간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지만, 수필에서는 자전적인 내용이나 자신이 일상 속에서 만난 사건과 감정의 편린을 솔직히 늘어놓곤 한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그 안에 쓰인 음악들부터 따로 갈무리될 만큼 널리 알려진 음악 취향,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경험한 위스키 삼매경, 유럽 여행 중에 기록한 문학에 대한 견해 등 별별 이야기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 아래 단정하게 모인다. <시드니!>(2000)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의 유력 스포츠지의 청탁을 받고 특별취재원으로서 시드니올림픽을 기록한 에세이다. 매일 400자 원고지 30매에 기관총을 쏴대듯 거침없이 써내려간 흔적은 그 분량을 소화하는 작가의 스태미나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시드니!>는 (2000년 시드니가 아닌) 별안간 1996년 애틀랜타에서 시작한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마라토너의 경기를 생생하게 그린 이 오프닝은 마치 <시드니!>의 전개에 대한 포부처럼 보인다. 우승 여부에는 별 관심 없이 대회와 그 주변 풍경에 기꺼이 눈을 돌리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앞선 각오를 증명하듯, 무라카미는 하루키는 타지에 온 자신의 신변잡기와 도시 시드니에 관한 잡다한 지식과 견해를 쏟아내며 마라톤 같은 연재를 소화한다. 호화 여객선 앞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배우 러셀 크로를 떠올리고,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는 일본인들의 목적은 코알라를 안기 위함이라고 구시렁댄다. 하지만 특파원의 본분은 꽤나 충실히 이행한다. 열심히 경기장을 쳐다보다가도 곁다리로 새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몇몇 특정한 순간은 끈질길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경기를 장식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건 올림픽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하는 한편, “본 그대로를 썼고 느낀 그대로를 썼다”고 못 박으며 스포츠, 올림픽과는 별개로 오스트레일라에 홀딱 반했다고 고백하며 책을 닫는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의 개정판 <시드니!> 속 곳곳에 자리한 이우일의 일러스트는 끝까지 오묘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도와 많이 닮았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이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밤 여기에 온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람의 마음속에 딱딱하게 굳은 무언가가 녹아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걸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력적인 순간이었다.”(252쪽)

“결국 우리는 투하 자본과 거대 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올림픽은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월등하게 친절하고 고상한 해설과 반복 재생이 첨부된 공동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 환상의 복합성이 만들어낸 것 중에는 우리의 실재와 분명하게 연결된 무언가가 있다. 환상의 실재성과 실재의 환상성이 어딘가에서 교차한다. 그것이 올림픽이라는 거대 장치를 통해 내가 지켜본 풍경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원근법인지도 모른다.”(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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