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비로소 작가로 남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문자 그대로 쓰는 이가 아닌, 스스로의 시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2015년 마지막 북엔즈에 꽂힌 세 작가의 책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관찰자로서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작가로 세상에 등장한 이래 한시도 거르지 않고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 성숙한 우화를 통해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올림픽 ‘특별취재원’이라는 대외적인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올림픽 자체에 대한 어떠한 흠모도 드러내지 않은 채 1996년과 2000년의 어느 27일을 자유롭게 기록했다. 김형경은 여자의 연애에 관해 쓴 많은 소설들을 지나 영영 정확히 알 수 없을 존재인 남자를 여러 학자들의 고견을 빌려 더듬어나갔다.
<파울로 코엘료 베스트 컬렉션>은 작가의 커리어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소설 <연금술사>와 <브리다>,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작게 만든 컴필레이션이다. 자서전을 닮은 출세작 <연금술사>와 대중에게 외면받고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작가 최초의 ‘번듯한’ 소설 <브리다>가 보여준 현자의 시선은 16년 후에 발표된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코엘료에게 붙는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이라는 수식은, 무수한 독자들의 지지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가리키는 것 같다.
소설은 물론 에세이 분야에서도 탄탄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포츠 잡지의 기자 자격으로 2000년 가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로 날아가 매일 다량의 원고를 써냈다. 그 글들을 엮은 <시드니!>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대문호의 뛰어난 필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전 지구적 캠페인인 올림픽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시드니올림픽 기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매일 바라보는 풍경을 매번 다르게 늘어놓는 장광설은 무척 맛있게 읽힌다. 곳곳에 드러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학다식은 여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소설가와 에세이스트의 위치를 건강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김형경은 영원한 타자인 남자를 살펴본 <오늘의 남자>를 발표했다.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을 택하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던 지난 책 <남자를 위하여>와 달리 이번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더 낱낱이 남자를 살폈다. 시선은 보다 날카롭되 대상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더 푸근해졌다. 부제에 ‘다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가 붙었지만, 결국 더 많은 남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